[한겨레21] 누리기 어려운 자유, 정당 만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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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4명 중 1명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한국갤럽, 2023년 1월 셋째 주 1천 명 설문조사) 이 무당층의 비율은 최근 6개월 동안 2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22년 11월 셋째 주 30%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뒤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지만 여전히 25~30%에서 오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의도로 오면 ‘무당층’은 힘을 잃는다. 제21대 국회에서 거대 양당을 제외한 비교섭단체 의석 비율은 5.01%(15명), 이 가운데 ‘무소속’ 의원 비율은 2.34%(7명)에 불과하다. 국회가 민의를 반영하는 창구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네덜란드 150명의 하원, 소속 정당만 17개
네덜란드 하원의 풍경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하원 150석을 구성하는 의원들의 소속 정당만 17개다. 특히 동물권을 주요 의제로 내세운 동물당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동물당은 2021년 선거에서 6석을 차지했는데 “과거 정부를 구성했던 사회당, 노동당과 불과 2~3석 차이가 나는 수준의 의석”이고 이는 곧 “연정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것”(오창룡, ‘유럽 동물당의 쟁점과 전략: 네덜란드 동물당 사례를 중심으로’, 2022년)으로 본다. 2006년 처음 원내에 진입한 동물당은 그동안 ‘모피 생산을 위한 동물 사육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서커스 동물 출연 금지’ ‘동물 사냥 금지’ 등을 굵직한 의제로 만들었다. 이 밖에 튀르키예 이민자를 중심으로 꾸려진 ‘이민자중심당’(DENK), ‘농민시민운동’ 등 여러 정당이 네덜란드 하원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 국회에선 왜 이런 ‘동물당’이나 ‘이민자 정당’을 볼 수 없을까. 거대 양당이 국회의 약 95%를 차지하게 하는 현행 선거제도가 원인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에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지나치게 제한한 정당법이 존재한다. 정당법은 ‘다수 정당의 난립’을 경계하던 군사정권 시절인 1962년 만들어졌다. 특히 다양한 의제나 지역, 집단을 대표하는 소수정당의 창당을 가로막는 조항으로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제3조), “정당은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제17조), “시·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제18조 1항) 등이 꼽힌다. 법에 따르면 서울에 반드시 중앙당을 두고, 최소한 5개 지역에서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정당만이 창당이 가능하다.
이러한 조항은 매우 예외적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국가에선 정당 설립이 자유롭다. 일본은 정당법이 아예 없고, 독일은 정당을 설립할 때 특정한 당원 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외된 집단에 더 큰 어려움”
선거제도개혁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정당법이 요구하는 1천 명이란 기준이 어떤 근거로 세워졌는지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지역별 인구수와 비례하는 수도 아니다. 김 대표는 “1천 명이란 수는 경기도에선 전체의 0.0071%고 세종시에선 0.28%다. 이는 세종시민이 경기도민보다 정당 활동을 하기가 약 40배는 어렵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일수록 최소 당원 수를 채우기 어려운데다 중앙당이 서울에만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수도권과 지역을 차별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이처럼 정당법이 헌법 제8조에 명시된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도 있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은 2023년 1월26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정당법은 조직과 자금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신생정당과 소수정당의 선거 참여를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의 권리를 대변하고자 모인 정당, 특히 여성·청년 등 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으로 결성된 정당에 더욱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당법 제3조, 제17조, 제18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페미니즘당은 2017년부터 활동해왔으나 정당법 요건을 채우지 못해 정식 창당하지 못했고 제21대 총선과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후보를 내야 했다. “정치인을 출마시키고 정책을 발굴하고 당원을 교육하는 등 정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지만, 현행 선거 구도에서 ‘무소속 청년후보’로 선거를 뛰면서 유권자에게 당의 존재와 비전을 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등록 정당만 가능한 ‘후원금 세액공제’가 불가능해 최소한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앞서 녹색당도 2019년 4월 정당법 제3조와 제18조 1항,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사가 정당 후원회원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한 정치자금법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2022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시·도 당원 1천 명’ 조항에 대해 6 대 3으로 기각했고, 나머지 두 조항은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또 울며 거대 양당 찍기?
그러나 헌법재판관 3명(이석태·김기영·이미선)이 낸 소수의견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현행법의 최소 당원 규정이 “정당의 내부 조직 문제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이처럼 수량화된 당원 수가 “견고하고 지속적인 조직 요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정당의 등록·취소 사무를 형식화·간이화하기 위해, 헌법적 가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봤다. 또 당원 수 같은 “높은 진입장벽”이 “정당체계를 폐쇄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는데다 과거 지구당 규정이 30~100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예컨대 각 시·도의 인구 규모에 비례해 당원 수를 조정하거나,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으로 구성하되 당원 수 요건을 줄이는 방안 등을 통해 “기본권 침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정당은 시민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다. 성평등, 기후위기, 장애인과 노인, 1인가구와 동물권, 이주민 등 거대 양당이 주목하지 않지만 ‘정치적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의제는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된다. 그럼에도 “이성애, 비장애인, 고소득층, 고연령, 고학력, 특정 직업 등 특권층 남성이 장악하는 한국의 정치”(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가 유지된다면, 국민 4명 중 1명은 여전히 지지 정당 없이 배회하다 투표일에 ‘울며 겨자 먹기’로 거대 양당을 찍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기성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에게도 여전히 정치에 희망을 품을 권리가 있다.”(김태일 참여연대 권력감시1팀 팀장) 정당법 개정은 그 희망의 출발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