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어디에나 있다. 땅과 땅 사이, 집과 집 사이, 여성과 남성 사이에 점과 선으로 존재한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민족과 종족 사이에, 사람과 동물 사이에, 사람과 나무 사이에 위계와 차별의 선이 그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위계, 폭력, 차별의 선을 넘어 경계를 없애겠다. 이것은 이해를 구하고 몸을 낮추는 과정이다. 페미니즘당은 모든 위계와 차별의 경계를 허문 자리에 존중과 공생을 채워 나가겠다.
‘우리’에게도 경계가 있다. 함께 여성 해방을 외치는 ‘우리’는 동일하지 않다. 경제 조건, 계급, 교육과 훈련, 장애와 질병, 성적 지향과 정체성, 국가, 인종, 민족, 문화적 자원의 정도가 다르다. 우리는 또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상호교차하며 연결되는 선들이다. 페미니즘당은 차이를 경쟁의 수단으로 삼는 대신 다양성으로 명명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사회 구조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평등을 외치겠다. ‘나의 삶’이 지배 권력에 따라 교차되는 지점을 연대의 자산으로 삼는 횡단의 정치를 해 나갈 것이다.
여성은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혐오범죄와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의 표적이 된다. 직장에서 가장 많은 성희롱이, 애인이나 남편 등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장 많은 성폭력이 발생한다. 여성의 몸이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에 찍혀 유포되고 있다. 혐오와 위협과 폭력은 모든 시간 어느 곳에서든 일어난다. 약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순환되는 구조적 폭력이다. 이 구조에서 여성 대상 범죄만 예외일 순 없다. 여성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페미니즘당은 여성이 어느 공간에서나 편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당연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모든 폭력과 혐오에 반대하며 비폭력사회를 만들겠다. 약자에게 안전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안전한 세상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겠다.
생리대와 브래지어 등 여성용품은 비싸고, 건강에 해로우며, 때때로 생명을 위협한다. 여성의 건강권을 존중하는 사회는 기본적인 여성 필수품을 차별없이 공급하는 사회이며, 임신과 출산 여부를 비롯하여 자기 몸에 관한 모든 결정을 여성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사회이다. 페미니즘당은 연령, 장애, 혼인 여부, 국적,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상관없이 여성 신체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더이상 가정 내 모든 폭력이 사랑, 친밀성, 의존, 위로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집안 사정’으로 취급되어선 안 된다. 폭력을 감추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성 가장이라는 환상 아래에서 가족을 그리는 가부장제는 이러한 은폐를 가능하게 한다. 경제적 자립 능력을 빼앗긴 여성이나 자립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아동과 청소년은 폭력에 노출되어도 외부의 도움 없이 신고하기 어렵다. 페미니즘당은 사랑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민법 제779조가 정한 가족의 범위는 이성 결합와 혈연으로 한정되며 그밖의 모든 관계를 탈락시킨다. 이성 결합이 아니거나 혈연이 아닌 모든 관계는 국가가 가족을 중심으로 부여하는 주거, 의료, 교육, 재산 등 많은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내 생활의 동반자’와 동떨어져 국가의 관리 시스템으로만 작동하는 혈연공동체 가족의 개념은 이제 해체되어야 한다. 페미니즘당은 가족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구성하는, 다양하고 평등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바꾸어 그리겠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
여성은 집 안과 밖에서 일한다.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은 채용부터 임금, 배치, 승진, 퇴직에 이르는 노동시장의 모든 과정에서 불평등을 겪는다. 결혼과 임신 가능성은 기업에게 ‘같은 값이면 남자’를 택할 명분이 된다. 취직에 성공해도 임신·출산·육아기 땐 손쉽게 고용 단절을 경험하고, 이후 노동시장에 재진입해도 저임금의 비정규직, 파견직 등 불안정 상태에 놓이기 쉽다. 한편, 남편이나 아이가 없으면 고용단절의 위험성이 줄어드는 대신 ‘부양할 가정이 없다’는 이유로 승진 대상에서 누락할 명분이 된다.
집 안에서 일하는 여성은 일하는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사, 출산, 육아, 돌봄과 같은 여성의 재생산 노동은 현재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여성 시민의 의무로 취급하면서도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성’으로 둔갑한 감정 노동을 강요하면서 이를 자연스러운 여성의 역할로 취급한다. 이 모든 것은 사회가 인정한 노동이 아니기에 여성은 노동자가 지니는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페미니즘당은 여성에 대한 임금노동시장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을, 사회가 외면해 온 재생산노동에 대한 가치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생산과 노동의 협소한 의미를 바꾸어 나가는 데 머무르지 않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일들을 노동과 생산의 출발점으로 놓겠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생선과 반 평도 안 되는 우리에 갇혀 산 돼지가 ‘고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항생제, 배란제, 살충제를 투여한 닭‘고기’와 닭알은 우리가 즐겨먹는 ‘완전식품’이다. 무분별한 성장만능주의와 비인간동물에 대한 부족한 감수성은 동물을 학대하고 땅을 재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구조는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오염과 더불어 비산업화 되어 있던 자급자족 공동체를 파괴하여 빈곤을 초래했다. 농업의 산업화는 종의 다양성을 없애고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농민을 착취한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해로운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핵에너지는 착취와 파괴를 넘어 모두의 멸망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가장 먼저 타격받는 이는 사회의 약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생태를 바라봐야 한다. 개발과 성장이 아닌 자연과 공존에 더 많은 무게를 두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위계 구조를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야 하며 지구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페미니즘당은 마을 공동체와 생태를 파괴하지 않는 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지구의 생명체들이 편하게 숨쉴 권리를 위해 힘쓸 것이다.
군대에서는 언어, 물리, 정서의 폭력을 동반한 가학적 훈련이 계속된다. 우리는 청년이 억압적 권위와 부당한 명령에 무기력하게 길들여지고 군사주의 문화가 재생산되는 것에 반대한다. 원하지 않는 이념 교육과 인명살상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고 군대 내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 나아가,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상태를 위해 개인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군대에 반대한다.
전쟁에 반대하지 않고 평화를 말할 수 없다. 페미니즘당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겠다. 남과 북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는 체제를 모색하고 실천할 것이다. 우리는 징병제에 반대한다. 전쟁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성과 약자를 향한 폭력에 저항한다. 자유롭고 평화로이 국경을 넘는 날을 꿈꾼다.
언젠가부터 안보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가 안보의 유일한 주체가 된 것이다. 안보를 빌미로 국가 폭력이 난무하고, 안보를 명목으로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다. 안보는 명목이며 폭력은 실질이다.
안보의 개념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페미니즘당은 공포와 결핍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포함하여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장애를 가지고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 늙거나 아픈 몸을 보호하고 치료받을 권리, 신체를 위협당하지 않을 권리, 안정적으로 노동을 이어갈 권리, 가족과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 즐거움과 휴식을 누릴 권리들로 안보의 개념을 바꿔 나갈 것이다.
수천 년간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을 자원 삼아 착취하며 성장했다. 근대국가를 지탱하는 가부장제를 등에 업은 채,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파편으로 만들고 인간을 부품으로 고립시킨다. 이 두 가지 지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배자들은 한 손으론 모성 신화와 가부장제 배당금을, 한 손으론 혐오와 폭력을 쥐고 여성의 희생을 발판 삼아 빛나는 발전을 이뤄 왔다. 국제 사회 속 한국의 위상은 그 사례다. ‘한강의 기적’ 뒷면에 독재의 역사가 있었듯,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뒷면에는 지워진 여성의 노동과 여성 운동의 역사, 성 감별 낙태의 역사가 있다. 이 역사를 지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반쪽짜리 대표성 아래 반쪽짜리 공정, 반쪽짜리 권리, 반쪽짜리 의무, 반쪽짜리 치안을 자랑스레 내건 채 형편없는 수준의 성평등 지수를 외면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에서 다양한 여성해방 운동가들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와 자연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우리는 이 역사를 이어받아 누구의 삶도 뒷순위로 밀리지 않는 평등한 사회정의, 지속가능한 생태를 꿈꾸며 주변화된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페미니즘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 이것은 바로 지금, 국가 경계를 넘어 시대의 요구이자 필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