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폭력 피해자는 합의금 받으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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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8 01:29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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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씨의 통화녹음이 화제다. ‘보수는 돈을 주니까 미투가 안 터진다’라는 발언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 발언의 맥락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가해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옹호하고 불쌍해하는 발언과 이어졌기 때문이다. 발언의 맥락이 보도되기 전, 나는 해당 발언만 사전 보도된 것을 보고 ‘맞는 말 아냐?’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성폭력은 어디에나 있기에, 보수정당에만 성폭력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건희씨가 문제의 발언 이후 보수진영에서 돈으로 성폭력 사건을 무마시킨 사례를 말할 줄 알았다. ‘보수는 돈을 주니까 미투가 안 터진다’라는, 누구나 상상할 법하지만 사례로서 드러난 적은 없는 그런 합리적 의심의 실체가 드디어 드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미투 운동과 피해자를 모욕하고 가해자를 동정했다. 같은 말도 돈으로 성폭력을 무마하려는 보수진영에 대한 비판적 맥락으로 이야기했다면 성폭력 가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겠지만 그는 보수진영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정반대로 활용했다. 여지없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의아했던 부분은 김건희씨의 말에 분노하는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었다. ‘(피해자에게) 화대를 안 줘서 (피해자가) 미투를 했다는 것이냐’라는 말이 그것이다. 어떤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합의금을 받고 합의를 한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이 몇 년 동안 이어질 재판 내내 폭력 경험을 복기해야 하거나 직장 내 성폭력의 경우 업계에 떠도는 안 좋은 소문과 2차 가해를 견뎌내야 하는 현실들을 돌아봤을 때 신고나 공론화를 결심하고 또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버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의 지지와 시간, 자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런 자원을 가진 피해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천재지변처럼 닥친 사건, 그리고 그럴 가치가 없는 가해자에게 내 인생의 긴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합의금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합의금을 선택한 게 잘못인가?
몇 해 전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올린 사진에 달린 성희롱성 악성댓글 중 일부를 고소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대응하며 악성 댓글들을 한차례 고소해본 적이 있었기에 가해자들의 대부분이 불기소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제대로 된 처벌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도, 진심인 반성도 담보할 수 없다면 내가 챙길 수 있는 최대한을 챙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합의를 요구하는 가해자에게는 변호사를 통해 합의금과 자필 사과문을 받고 합의를 했다. 빠르고 확실했다. 합의금 액수를 벌기 위해 그들은 노동을 해야 할 것이다. 가해자들이 합의금을 보내면서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큰 코 다치는 구나’라고 생각할 것을 상상하니 그들이 기나긴 재판 끝에 불기소와 기소유예를 받아들고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합의금을 받는 게 피해자인 내 입장에서는 정의구현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합의금은 고소인들과 N분의 1로 나눠 가졌기에 적은 금액이었지만 통장에 숫자가 확인되니 뭔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금융치료’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성폭력, 성희롱 피해자들을 누가 치유하고 보호해주나?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비용은 누가 내주나? 폭력의 후유증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 생계비는 누가 대주나? 법무부에는 범죄피해자보호·지원제도가 있다지만 내가 국가의 돈으로 지원을 받을만한 합당한 피해자인지 검열하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긴 힘들다. 나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사람, 나보다 더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받아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나의 피해를 가볍게 여기게 되기도 한다. 애초에 성차별 사회는 성폭력 피해를 ‘자살할 정도로 삶을 망치는 것’ 아니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니,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지원에 대해 검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피해는 과거에 일어났지만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고 피해자는 그 상처를 치유할 자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합의라는 제도가 있고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나로선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으면 ‘꽃뱀’이라며, 더 나아가 ‘화대’를 받았다며 욕한다.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았다고 해서 성폭력 피해가 없던 일이 되거나 성매매로 둔갑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합의금은 피해자가 합의를 요구하는 가해자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화대를 안 줘서 미투했다는 거냐’라는 말은 지금까지 위력이 두렵거나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당장의 생계나 치료가 막막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받은 합의금(인지 협박금인지 모를)을 ‘화대’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다. 화대라는 말은 돈을 주고 성을 정당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성매매는 등가교환이라는 인식이 녹아 있다. 다 틀렸다. 꽃뱀과 화대는 모두 판타지다. 피해자에게 돈을 줬다고 성폭력 피해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직도 말할 수 없어서 ‘미투’하지 못한 피해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도 피해자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