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구조적 차별' 없다면서 유권자 차별하는 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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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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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차별' 없다면서 유권자 차별하는 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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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소수자 당사자 질의 ‘무응답’…원칙 없는 답변에 유권자 배제 일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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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를 성별로 가르고 여성·성소수자를 홀대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표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대상을 지워버리는 행태가 국민 통합을 추구한다는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격하다는 지적이다.

윤 후보는 앞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지난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우선 순위로 공약한 것은 편가르기 의도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윤 후보는 당시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윤 후보는 "집합적인 남자, 집합적인 여자의 문제에서 개인 대 개인 문제로 바라보는 게 훨씬 더 피해자나 약자의 권리, 이익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렇게 답한 그는, "그 대답을 하는 데 시간을 쓰기 싫다"면서 상세한 답변을 거부했다.

여성 성차별은 없다던 윤 후보의 캠페인 광고엔 '피해 받는 남성'이 등장했다. 신입사원 공개채용 자리에서 면접관으로 여성 2인과 남성 1인, 지원자로 여성 1인과 남성 2인이 등장한다. 여성 지원자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성 지원자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에 붙어 있던 수험표를 거칠게 떼어내면서 면접장을 나선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고"라는 내레이션과 자막이 흘러나온다. 소위 '여성 우대에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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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자 한국일보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인터뷰 일부와 이에 대한 21일 대선 후보 TV토론 당시 윤 후보의 답변 장면. 사진=한국일보 지면 기사, YTN 유튜브 
이 영상은 여성에 대한 채용 성차별을 지웠다고 비판 받았다. 지난달만 해도 KB국민은행이 남성 합격률을 높이려 평가등급을 조작한 사건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하나은행이 남녀 채용 비율을 정해두고 여성 지원자만 커트라인을 높여 떨어트린 일이 적발됐다. 2019년엔 감사원 감사 결과 서울교통공사가 과거 전동차 검수지원 및 운전 분야의 무기계약직을 공개채용하면서 여성 지원자 점수를 과락으로 조작한 일이 드러났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22일 "지난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채용 담당 임원이나 면접 담당자 중 여성 비율은 극히 낮았다(실무면접 22%, 최종·임원면접 16.5%)"면서 "윤석열 후보는 채용 성차별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며 개선할 의지도 전무하다고 전 국민에게 광고하려는 것인가?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에 여성이 자리는 없다고 공표하려는 것인가? 윤 후보에게 청년 여성은 유권자가 아닌가?"라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던 윤 후보는 24일 공개한 공약집에서 '성별근로공시제'를 약속했다. "한국의 고위공직자 및 기업 임원 여성 비율 세계 134위,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기회 부문 123위, 교육 104위, 건강·생존이 54위, 정치적 기회는 68위로 매우 낮다"면서 "경제활동(노동) 참가율 제고, 관리직 및 이사회 여성비율, 의회 내 여성의원 비율 제고, 남성육아휴직 장려 등으로 성격차지수 및 유리천장지수 등 국제적 성차별지수 개선 효과"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다고 해놓고, 유튜브에선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며 청년 일자리 문제를 '남성 대 여성' 갈등으로 치환하더니, 공약집에선 여성의 경제적 참여를 늘리겠다고 한다. 설명은 하지 않는다. 명확한 원칙이나 철학 없이 필요할 때마다 편가르기를 활용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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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윤석열' 채널 갈무리 
이는 성평등 질의 대부분을 무응답으로 일관해온 태도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윤 후보는 지난해 11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정책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 8일 한겨레가 여성·성소수자 유권자 20명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대선 후보 정책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지난 23일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의 성평등 정책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세 질의에 모두 답하지 않은 후보는 윤 후보가 유일하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은 23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다양한 단체와 언론사가 진행하는 성평등 정책질의에 일관되게 무응답하고 있다"며 "이는 윤 캠프가 가진 공약도 홍보하지 못할 뿐더러 여성 유권자들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후보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려왔다. 공약집에도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관련 입장을 밝힌 대상은 보수 개신교 단체였다. 8일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윤 후보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답변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국민의힘 기독인회는 정의당 등이 추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고 했다.

최근 국제인권단체의 여성·성평등 질의엔 차별금지법 등을 '일부 추진'하겠다고 답했지만 역시 설명은 없었다. 23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공개한 7대 인권의제 질의에 대한 답이다. 성소수차차별무지개행동은 24일 "'일부추진'으로 일관된 윤 후보의 답변은 구체적인 질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채 무성의한 답변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정말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변화된 입장이 있다면 윤 후보는 그간 보여준 차별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사죄하고 적극적인 의견표명을 해야 할 것"이라 촉구했다.

무지개행동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공약은 실종된 채 혐오의 말만이 떠돌아다니는 이른바 '혐오대선' 속에서 많은 소수자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못하는 효용감의 상실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왔던 상황 못지않게 소수자의 이야기가 실종된 이번 대선에 많은 성소수자들은 분노와 실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