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 선 넘기] 유미의 세포들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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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1 00:00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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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Stone Music Entertainment
최근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봤다. 원작 웹툰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세포들의 목소리,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의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있다는 점이 몰입감을 높였다. 하지만 웹툰이 만들어지고 몇 년이 지나서일까? 드라마는 성인지적 관점에서 봤을 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성세포는 남자, 감성세포는 여자?
유미의 세포들 중에서도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이성세포’이다. 이전에도 유미의 이성세포는 머리가 짧고 감성세포는 긴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어 성별 이분법을 강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드라마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성세포는 남성의 목소리, 감성세포는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했다. 이성과 합리성은 남성의 영역이고 감성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왜곡된 성 편견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미의 세포들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세포들은 불안세포, 세수세포, 패션세포, 집안일세포 등이 있고 남성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세포들은 출출이, 명탐정세포, 낚시세포 등이 있다. 물론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삶의 요소가 다 ‘여성적’인 것은 아니기에 유미의 세포들 중에서도 ‘남성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남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특성과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특성이 목소리의 성별과 일치하도록 표현했기에 문제적이었다.
웅이의 세포마을에 있는 것과 없는 것
반대로 웅이의 세포마을에는 여성의 목소리로 묘사되는 세포가 없다. 여성의 목소리가 있다면 단 하나, 구웅의 모든 세포들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의 안내 목소리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상대방을 거스르지 않고 보조하는 역할에 적합하다는 편견 때문에 여성의 목소리가 각종 안내 음성에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지 오래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공지능 세포가 굳이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되었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또 유미의 남자친구인 구웅의 세포마을에는 집안일 세포가 없다. 대신 인공지능 세포가 일정한 배열에 따라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웅이는 집안일 세포가 없어도 집안일을 잘한다. 서울시가 발간한 '2020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 : 서울시민의 일·생활 균형 실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여성들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평균 2시간 26분, 남성은 41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3.6배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1년에 방영되는 드라마의 젊은 남성주인공에게 집안일세포가 없다는 설정은 남성과 집안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웅이의 응큼세포는 왜 공룡일까?
마지막으로 웅이의 응큼세포는 사람이 아니라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 중에서도 난폭한 육식공룡으로 유명하다. 웅이의 이성세포는 웅이가 성적욕망을 느낄 때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응큼사우루스’를 달래느라 애를 먹는다. 인류가 등장하기도 전에 존재하다 사라졌던 공룡이 웅이의 세포마을에서 최첨단 인공지능과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남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강화한다. 남성이 성욕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편견은 폭력적인 남성성을 정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가 과거보다 성평등한 남성성을 묘사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