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윤석열 정부는 문화예술 검열을 멈춰라 : 부마민주항쟁기념식의 <늑대가 나타났다> 배제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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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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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올해 부마항쟁기념식을 3주 가량 앞둔 상황에서 행정안전부에서 ‘무색무취’의 행사를 요구받았다며 기념식 공연을 준비해온 뮤지션 이랑에게 ‘늑대가 나타났다’ 곡을 다른 곡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뮤지션이 이에 응하지 않자 재단은 일방적으로 공연 취소 통보를 했고, 결국 기념식 공연을 다른 뮤지션과 다른 노래로 교체했다. (관련뉴스 : 부마항쟁기념식에 "노래 빼라"…행안부발 '검열 그림자' / JTBC 뉴스룸 https://youtu.be/tiEsBg9JBfk


뮤지션 이랑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왔고 여성혐오, 여성폭력에 저항하는 집회나 페미니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민중가수이며 특히 청년 여성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퍼포머이자 뮤지션이다. 그는 '2017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받은 트로피를 현장에서 50만원에 경매하며 예술인들이 가난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현실과 상금조차 수여되지 않는 시상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 올해 초에는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시상식에서 공연하며 약 40명의 합창단이 수어로 ‘차별금지법, 지금!’을 이야기하도록 무대를 구성해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행안부는 “미래지향적인 밝은 느낌의 기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 검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해명이 사실이라고 전제해도 문제는 똑같이 남아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한 마디 제안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재정 지원을 받는 기념재단의 입장에서도 그러할까. 재정 지원에 얽힌 위계 때문에 지원을 받는 재단은 지원해주는 기관의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간접적인 압력이라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가 지원이 끊기고 재단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걱정해야 한다. 따라서 사소한 제안일지라도 무조건 따라야 할 윗선의 지시이자 압박이 된다. 이러한 관계에서 가벼운 제안이란 있을 수 없다. 사소한 제안도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제안했을 뿐 검열한 게 아니라고 주장해봤자 그 위치와 권한을 인식하지 못한 무책임한 변명일 뿐이다. 


특히 문화예술에 돈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어떤 제안을 하고자 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서 판단해서는 안 되며, 예술가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 예술가의 사상을 검증하려고 하거나 작품의 방향성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행태는 예술가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행안부의 ‘제안’은 이러한 문화예술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처사이기도 하다. 


또한 무작정 밝은 느낌만이 미래지향적이라고 여기는 행안부의 편협한 생각에는 더욱 동의할 수 없다. 이랑의 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부자들이 남긴 찌꺼기를 먹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폭도, 마녀, 늑대로 몰려서 희생되는 비극적 현실을 드러낸다. 예술작품이 비극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일부러 비극을 심화하거나 어두운 느낌에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비참한 정서에 공감하고 이를 위로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래지향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통렬한 비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기념재단에서 대신 부르라고 제안한 <상록수>나  <솔아솔아푸르른솔아>가 밝은 느낌의 노래인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이랑의 노래보다 오히려 더 어둡고 비참한 정서의 곡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이 두 노래가 행안부의 주장대로 ‘밝은 느낌’의 노래라서 독재정권시기에 사람들을 위로했겠는가? 행안부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미래도, 밝은 느낌도, 민주화 정신도 모두 잃은 의미 없는 기념식을 진행했을 뿐이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행안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수용하고 예술작품과 예술가 검열에 동조한 행태에 대해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재정 지원에 굴복하는 정신이 민주화 정신인가. 예술가의 목소리와 생계를 빼앗아 재단의 존립을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인가. 부마항쟁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고여서 썩어가고 있는가.


지난 10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윤석열차’ 만화를 그린 학생에게 금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경고 조치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 당시에도 문화예술 단체들의 적극적인 반발이 있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는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며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급기야는 도어스태핑을 중단하는 등 국내 언론을 무시하고 검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정치인들까지도 이를 옹호하면서 지자체에서도 특정 도서나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는 명백히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으며, 예술가들의 저항정신과 비판의식을 말살해 정권에 호의적인 예술만을 양산하려는 사상정책을 펴고 있다. 페미니즘당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작가와 예술 작품에 대한 사상검증과 검열을 자행하는 현 정부의 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첫째, 행정안전부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가수 이랑과 기념식을 준비했던 공연팀에게 사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둘째, 뮤지션 이랑의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으므로 공연을 진행했다고 가정하여 공연준비팀에게 약속된 금액과 피해보상액을 지급하라.

셋째, 윤석열 정부는 예술작품이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검열하는 행태를 멈춰라.


2022. 11. 23.

페미니즘당 창당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