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②] 페미니스트 군대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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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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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두 번째 논평은 군사제도에 대한 여진의 글입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유난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제가 있다면 아마 군대가 그중 하나 아닐까.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징병제는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고 그러므로 복무자에게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거나 여성도 징병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굉장히 쉽게 들을 수 있다. 여성 징병제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가 한 달 만에 30만에 가까운 동의를 얻었고 군 가산점 문제는 지금도 대선주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회를 더 성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군가산점이니 여성징병제니 하는 제도들은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배제, 혹은 경멸일 뿐이다. 장애인이나 여성 등 병역을 면제 받은 이들은 채용이나 승진 등 고용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그냥 군대가 가기 싫은 사람으로 납작하게 취급된다. 그리고 여성은 군대에 대한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군대는 무엇이며 페미니즘적인 군대는 어떤 군대일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군대 내 성평등 문화이다. 지난 3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중사가 상급자인 남군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그로부터 두 달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군은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하지 못했고 2차 가해까지 있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은 총 4,936건이고 인권위 조사에서는 여군 9명 중 1명이 성희롱에 노출되어있다고 한ek. 


군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은 당연히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전히 군대 내 여군을 향한 성폭력은 자행되고 있다. 여군은 이렇게 가시화된 피해부터 무시, 거리두기, 차별적 승진·보직 등 비가시화되는 피해까지 상당한 위험부담과 차별을 겪으며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여성도 군대를 가라는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성폭력과 차별 없는 군을 만들어 나가는 게 군 내 성평등을 향한 첫 발걸음일 것이다.


3년 전 군 내에 양성평등센터가 창설되어 여러 대책과 매뉴얼을 마련했음에도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성범죄를 민간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군사법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화했지만, 국가안전보장, 군기기밀보호를 이유로 국방부장관이 관할 법원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등 치명적인 한계점이 있다. 군대의 이런 폐쇄적인 성범죄 처벌 방식은 군 내 성평등에 해가 될 뿐이다.  


성평등한 군대를 위해 짚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다.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에게 군복무가 가능한 나라는 19개국이다. 대부분 유럽국가이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스라엘도 가능하다. 미국은 바이든 정권에 들어서 허용되었다.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유일하게 가능하지만, 호르몬치료나 가슴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만 군복무가 가능하기에 부분적 허용 국가로 분류된다. 트랜스젠더의 군복무가 군의 전투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남성 상징(음경, 고환)의 결손을 이유로 강제전역되었던 故 변희수 하사 역시, 동료들은 오히려 그와 함께 복무하는 것을 원했고, 군인으로서 그의 능력을 존중했다. 병영 선진화를 부르짖으면서 능력있는 군인을 양성 규범에 맞지 않는다고 강제 전역 시키는 군은 무엇을 선진화하려는것일까? 병영 문화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 하다. 


지난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이 위와 같은 사유로 인한 강제전역은 부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 판결이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덧붙인 것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군의 이런 성별이분법적 사고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故 변희수 하사는 강제전역 처분을 받은 후에도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성징의 결손을 이유로 강제전역시킨 군의 태도는 국민을 지키는 군이 취해야 할 태도가 맞는가.


독일의 평화학자 디터 젱하스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면서 독재를 준비할 수는 없는 것처럼, 평화를 원한다면서 전쟁을 준비할 수는 없으며, 평화를 가능케하는 요인들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종전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이다.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사들이며 군비 경쟁을 벌이는 것, 군사력 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군대 내 폭력을 묵인하는 것은 불안을 조장하고 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우는 행위이다. 한국 군대는 내부로는 병역제도의 개혁과 더불어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외부로는 종전을 앞당기고 무분별한 군비 경쟁을 멈추어야 한다. 현재로서 병역제도의 개혁으로 제시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모병제이다. 하지만 현재의 모병제는 더욱 전문화되고 강력한 군대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모병제는 강력한 군대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누구든 강제로 징병되지 않으며 모든 방면으로 축소된 군대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이런 축소가 언젠가 있을 군대 폐지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군대에 대한 개혁은 단순히 대선철 남발되는 공수표가 아니라 꾸준한 의지를 갖고 차근차근 외내부 개혁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군대에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한 군대 내 성폭력, 가혹행위,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기본권을 침해하는 징병제 등군대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지금과 같은 폐쇄성을 버리고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다각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현재 그 어느 조직보다도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폐쇄적인 군대는 군인들의 다양한 상황과 정체성을 포괄하지 못하고 군대가 만들어낸 표준적인 남성만을 정상 시민이라고 규정 짓는다. 페미니즘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인권적인 차별과 혐오를 어떤 시각으로,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페미니즘은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섹슈얼리티부터 계급, 가난, 연령, 장애 혹은 질병, 성격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체성이 있고 그 정체성은 서로 교차되어 있다. 군대에서 이런 정체성들이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준비하며 다양한 정체성이 인정되는 안전한 군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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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