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박원순과 함께했던 청년들이 '박원순 다큐' 막자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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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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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단체들, '박원순 다큐' 저지운동 선언 "시사회는 2차 가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 개봉을 앞둔 가운데 청년 활동가들이 "2차 피해에 동조할 수 있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며 영화 불매운동, 상영회 대응행동 등을 예고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참여연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등 4개 청년단체는 19일 오후 성명을 내고 △박 전 시장 다큐멘터리 지지자 상영회 대응 △해당 이슈에 관한 공론장 개최 등 후속 대응을 위한 연대 서명을 시작했다.


서울에 근거지를 둔 이들 단체들은 대부분 박 전 시장 재임시절 이뤄진 서울시의 진보적 정책사업에 직간접적으로 함께했던 이들이다.


박 전 시장은 재임 당시 △청년정책네트워크 등 청년·시정 간 거버넌스 형성 △청년혁신파크, 무중력지대 등 청년공간 설립 △청년수당 및 구직활동지원사업 시행 등 적극적인 청년친화정책을 펼치며 전국적인 청년정책 활성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들은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이 강조하는, 고인이 기여한 '혁신과 변화'의 결과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성명을 기획한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1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이후 박 전 시장 재임 당시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와 함께 만들었던 성과들은 후퇴하고 있다"라며 "박 전 시장에 대한 평가 자체가 양 극단으로 나뉘면서, 시민사회가 이러한 '퇴행'에 잘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 재임 이후 서울시는 서울혁신파크,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청년허브, 무중력지대 등 박 전 시장 재임 당시 형성된 공공 공간들의 운영을 종료하는 등 '박원순 지우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해당 공간들은 운영 기간 동안 청년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다양한 실험과 거버넌스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성명에 참여한 이주형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많은 청년활동가들이 '박원순과 함께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시민사회에 대한 박 전 시장의 영향력이 컸던 것은 맞다"라면서도 "그러나 그러한 공적 평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박원순은 성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은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지자들이 박 전 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선, 박 전 시장의 지난 정책적 행보를 분석·평가하는 일조차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작용할 수 있다.


성명에서 청년들은 "시민사회의 성과를 폄훼하지 않으며 온당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는 (박 전 시장의 가해사실을) 마주해야 한다"라며 "그가 남긴 여러 발자국을 긍정한다면, 당연히 그가 행한 성폭력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8월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첫 변론>의 경우 "'박원순의 사회적 의미를 기린다'는 명목하에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행위를 부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박 전 시장의 행위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없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후원자 다큐 시사회를 개최하는 움직임은 2차 피해를 유발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가현 대표는 "예고 영상 및 설명을 보면 다큐의 내용은 박원순의 생애를 훑어가는 내용이 아니라,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며 "이런 내용의 다큐는 상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앞으로 △영화 <첫 변론>에 대한 불시청·불소비 행동 △후원자 시사회 현장 시청 반대 운동 등을 이어나가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이들은 "박 전 시장이 남긴 허물과 성취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번 행동의 궁극적 목표라고도 밝혔다.


이주형 대표는 "시민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성과와 과오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박 전 시장의 공적 평가는 언제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성폭력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이 이루어진다면 박 전 시장의 성폭력 가해사실과 그가 시민사회에 기여한 성과는 양립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가현 대표는 "박 전 시장이 '성폭력'만 잘못했고 '정책'에 있어선 모든 걸 잘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의 정책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비판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라며 "다만 그런 다양한 '평가' 자체를 시작하기 위해 일단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확실히 하고 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은 오는 8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다큐 제작을 맡은 '박원순다큐멘터리제작위원회'와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측은 본래 박 전 시장의 3주기인 7월 9일 즈음을 개봉일로 설정했으나, 개봉 소식 이후 일어난 성폭력 2차 가해 논란 속에서 개봉일이 미뤄졌다.


제작진은 오는 20일부터 전국에서 다큐멘터리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개최한다.


한편 박원순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측은 20일 <프레시안>에 입장문을 보내 "박원순 시장의 공과 과를 함께 보겠다는 말씀을 환영한다"라면서도 "그러나 분별없이 열린 질문을 봉쇄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청년단체들이 상영 반대 운동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첫 변론> 후원자 시사회에 대해 "이것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동의하고 연대하는 일반 시민 후원자와 함께하는 '후원자 시사회'"라며 "불시청과 불소비 행동은 자유이나, 후원자 시사회 현장에서 시청 반대 운동을 하며 일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한 시도인지 묻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한예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