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페미니즘 실현시키려면 반드시 정치가 역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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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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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을 가져야만 풀리는 서사 

지난 3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페미당 전체회의에서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된  정다혜씨(오른쪽)와 최여진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정다혜씨 제공

지난 3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페미당 전체회의에서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된 정다혜씨(오른쪽)와 최여진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정다혜씨 제공


|페미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정다혜·최여진씨 

국회엔 너무 비슷한 사람만 있어…페미니즘 의제 몰입 정당도 필요
다양한 삶을 상상할 기회 주는 ‘생활동반자법’ 가장 주력하고 싶어
정치 문화,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결혼 생활은 어딘가 이상했다. 물음표가 자꾸 생겼다. 명절에는 왜 시댁에 먼저 가야 하나. 친정은 시댁과 왜 동등하지 않나. 2014년 스물다섯에 결혼한 정다혜씨(31)의 머릿속에는 ‘왜’라는 말이 꼬리를 물었다. 

“주변에선 다 그렇게 산다고, 참으라고 했어요. 하지만 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서 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잖아요.” 지난달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씨는 크고 작은 ‘왜’를 거듭하다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했다. 모순 투성이인 결혼을 포함해서 여성이 살아갈 만한 모습의 세상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페미니즘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다. 무엇이 필요할까.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을 한 명만 만들어도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될 수 있어요. 페미니즘 의제를 일상에서 실현시키려면 반드시 정치가 개입돼야 합니다. 또 ‘운동’보다는 ‘정치’가 저랑 더 맞겠다고 판단했죠.” 

2015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전후로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거쳤다. 가리고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쏟아졌다.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차별 없는 사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요구는 국회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고, 번번이 좌절됐다. 

“국회에 너무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있어요. 여성과 노동, 생태, 퀴어 등의 분야에서 ‘당사자’성이 떨어집니다. 국회 밖에서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슈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법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 의제에 몰입한 정당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들이 국회에서 직접 활동했으면 좋겠다고요. 다른 정당의 견제도 받으며 논의를 확장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녹색당이 미세먼지, 탈핵과 같은 환경 이슈를 꾸준히 말한 것처럼요. 결과적으로 이 문제들은 ‘녹색당 이슈’로만 끝나지 않았죠.” 

여성의 요구가 현실의 이슈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국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생겨났다. 정다혜씨와 함께 ‘페미당’의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여진씨(26)도 그랬다. 기존 정당이 해소하지 못한 ‘갈증’을 비슷한 또래의 젊은 활동가들이 풀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왜 ‘여성’ 정당일까.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여성 정당이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여성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뜻이다. 현 20대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정당들의 주요 공약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은 아예 다뤄지지 않아요. 오히려 민주당은 20대 남자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고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 기득권, 가진 쪽의 목소리만 적극적으로 듣죠.”(정다혜) 

최여진씨는 “국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남성 중심의 정당이지만 그들에게 왜 ‘남성’ 정당이냐고 묻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대통령’이라고 썼다. “희망사항으로 썼지만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린 눈에도 TV에서 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전부 저랑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었으니 그랬나봐요. 괴리감이 들었달까요. ‘왜 여성 정당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씁쓸한 이유기도 해요.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동시에 ‘정치도 여성이 하는 판’이라는 생각부터 싹텄으면 해요.” 

정씨는 여성 정당의 당위성을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에서 찾는다. 그는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반년 정도 더불어민주당의 디지털공보단에서 일을 했다. 직접 경험한 당원 활동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현안이라고 생각했던 ‘성평등’ 의제는 늘 후순위로 밀렸다.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다. “좋아하지 않으며 합법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이어졌다. 정씨는 당시 토론회가 끝난 뒤 당과 당 지지자들의 태도가 무서웠다고 한다. “제가 원하는 것을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겠다 싶었어요. 그 길로 민주당을 떠났죠.” 

지난 1월11일 서울 중구에서 페미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지난 1월11일 서울 중구에서 페미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녹색당에 있었던 최씨는 여성특별위원회를 맡으며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의제를 위한 정당을 생각하게 됐다. 정씨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의제만을 이야기하는 정당’이 국회에 입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경제력이 있는 50대 남성이 장악한 정치판에 변화가 필요해요.” 그렇게 페미당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에 뛰어들었다. 

정치는 이들에게 일상의 연장, 일상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최씨에게 불법촬영금지법과 성폭력특별법, 1인 주거권은 생활과 직결된다. 이 법을 통해 안정된 주거를 보장받고 폭력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그에게 다양한 형태의 ‘생활동반자’를 인정하도록 한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을 ‘선택’의 영역에 두고 다양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최씨처럼 결혼하지 않은 여성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정씨에게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법이기도 하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지만 요즘은 저희가 ‘왕따’인 듯한 기분이 들어요. 결혼 전에는 딩크족으로 살겠다던 친구들이 모두 아이를 낳았거든요. 압박감도 느끼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된다면 이런 종류의 압박은 줄어들 거예요. 결혼 역시 불완전한 제도잖아요. ‘결혼은 절대 깨질 수 없다’는 인식이 커서 불행하게 가정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고요.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에 매여서 불행해진 사람들도 제도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창당을 하게 되면 이 법안을 가장 주력해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 혜화역 불법촬영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한국 여성들이 지난 몇 년간 사회를 바꿔온 궤적이다. 여전히 싸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적어도 ‘성폭력은 피해자가 빌미를 줬다’고 말하거나 불법촬영물을 ‘몰카’라고 부를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모두가 ‘참고 살라’며 결혼의 불편함을 모른 척할 때 정씨가 부당함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이들은 여성들의 정당을 통해, 정치력을 통해 더 많은 ‘불편한 용기’를 공론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시위에 나가거나 국민청원에 동참하며 목소리를 내왔어요. 이제는 페미니스트가 선거의 후보자가 되고, 페미니스트 유권자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찍기도 해요. 많은 여성이 정치가 삶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고, 정치는 여성들에게 의미가 점점 더 커질 거예요.”(최여진) 

이들이 꿈꾸는 정치의 문법 역시 페미니즘적이다. 의제로 다루는 내용뿐 아니라 방식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성별동수제와 채용 성차별 금지, 불법촬영 금지 등의 의제를 비롯해 의사소통 방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위계를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페미니즘은 경계를 넘는 수단입니다. 수많은 경계로 나눠진 사회임에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문화가 사라졌어요. 정치의 문화는 성별과 정체성, 성적 취향 등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정다혜) 

창당을 준비 중인 페미당에서 토론의 ‘대원칙’은 설득이다. ‘의견이 다르니 대화하지 않겠다’는 사고는 금기다. 토론을 통해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충분히 이야기하고 합의한다. 그래서 회의는 보통 일찍 끝나도 4시간이 걸린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수긍하면 그때 의사결정을 내린다. ‘마라톤토론 문화’가 생기면서 회의가 결론이 나서 끝나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 막차 시간에 맞춰 끝날 때도 있다. 수직적 문화를 경계하기 위해 호칭은 나이와 직급에 상관 없이 이름에 ‘님’을 붙이는 것으로 통일했다.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부터 정치라고 생각해요.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자르는 건 정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설득하고, 협력하고, 연대 방향을 찾아 교차점을 모색하는 거죠. 끊임없이 대화하는 게 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최여진) 

2018년 창당 모임을 시작한 페미당은 지난 2월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또 다른 여성 정당인 ‘여성의당’은 지난달 8일 창당을 했다. 

정다혜씨는 페미당도 “창당은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정치는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존재와 요구가 법과 제도로 구현될 때까지 계속 말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에요. 수많은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적 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저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여성들의 존재, 페미니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여성 정당의 ‘정치판’은 이제 시작이다.   

경향신문 2020.04.02 보도.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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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4022112005#csidx9a28cafa734cf5ca53793fe53f6abbf onebyone.gif?action_id=9a28cafa734cf5ca53793fe53f6ab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