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 선 넘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자매애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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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2 00:00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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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강원도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천막농성장에서 직접고용 쟁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어느덧 주변에서 ‘자매애’라는 말을 찾기 어려워졌다. 갈등에 지친 페미니스트들이 ‘정말 자매애가 존재하는 거야?’라고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수도 있고, 여성 간의 연대를 혈연인 ‘자매’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사용을 꺼리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여기엔 반드시 ‘자매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곳이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직고용 전환 투쟁이다. 이들은 올해 내내 건보공단 본부가 자리한 강원도 원주에서 투쟁 중이다. 파업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지부장이 더운 날 단식까지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 공약에 따라 작년 말까지 19만 2천698명의 정규직 전환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건보공단 고객센터의 직고용은 자꾸만 미뤄지는 이유가 있다. 건보공단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직고용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반대 이유는 상담사들이 정규직 입사 과정을 거치고 들어오지 않았고 상담업무는 비전문적이어서 직고용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타칭 ‘노노갈등’ 뒤로 사측도 숨고 정부도 숨는 모양새다.
건보공단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의료 공공성을 담보하는 공기업이다. 재직자의 자부심과 만족도가 대단하고 임직원 중 여성의 비율이 절반에 가깝기도 하다. 국민은 고객센터와 홈페이지를 통해 건보공단을 만난다. 이러한 건보공단 고객센터 업무는 2006년까지는 정규직들의 업무였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2006년 이후 간접고용 여성 노동자들이 고객센터로 들어오니 이제 상담을 하찮고 비전문적인 노동으로 여긴다.
공공부문의 고용불안은 서비스의 질과 공공성을 악화한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또한 외주화된 후 상담사들이 콜 수를 올리라는 압박을 받아 세부적인 상담이 필요한 부분도 대충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담을 했을 때에도 위탁 업체가 건보공단으로부터 재위탁을 받기 위해 내담자에게 상담점수로 5점을 선택해 달라는 말까지 해야 한다. 세계적인 의료 공공성을 떠받치는 이면에는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정규직 여성들이 더 이상 여성들이 하는 노동의 가치 절하에 동의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우리 회사의 유리 천장과 임금 격차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우리 회사가 간접고용한 고객센터 상담사나 청소노동자들은 열악한 위치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기주의다. 여성이 주로 하는 상담이나 청소 같은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결국 여성의 지위를 약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차별주의가 아니면 무엇이 성차별주의일까?
정규직 여성과 비정규직 여성의 자매애는 불가능할까? 정규직 여성처럼 비정규직 여성도 마찬가지로 혼자 또는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분투하는 한 명의 노동자라는 인식을 공유하면 어떨까. 그래도 여전히 NOT IN MY WORKPLACE 일까. 누구보다 답답할 강원도 원주의 여성들에게 한 명의 페미니스트가 보내는 ‘자매애’의 마음이 닿기를 바란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서울시당 창당준비위원장.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