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벌려] 2021 미투선거 시국회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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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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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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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5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열어둔 ZOOM 화상회의에는 무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 회의의 이름은 ‘2021 미투선거 시국회의’였다. 이 시국회의의 목적은 세 가지다. 2021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를 상기하여 박원순 성폭력 사건, 오거돈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정치계에 촉구하고, 재보궐 선거를 성폭력 심판 선거로 만들 수 있도록 직접 대응하고, 현 시국에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신지예 대표가 제안하고 나를 포함한 10명의 사회 각계의 10~30대 여성들이 이 시국회의의 제안자로 나서는 데에 동의했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국회의에 함께했다. 저녁 8시 30분부터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진행된 시국회의에서 나는 이번 선거를 향한 시민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시국회의를 준비하며 시국회의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활동가는 ‘미투선거’라는 말을 붙였을 때 맞닥뜨리게 될 ‘미투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김어준식 비판이나 미투운동에 대한 각종 조롱과 2차 피해를 우려했다. 미투선거라는 말을 보수진영에서 먼저 사용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이런 우려들로 ‘2021 시국회의’, ‘위력성폭력 심판선거 시국회의’나 ‘여성시국회의’등의 이름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 시국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결국 ‘미투선거’라는 단어였다. ‘미투선거 시국회의’라는 이름은 남성정치인의 성폭력 가해를 고발한 피해자와 연대하면서도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해서 끝내는 성폭력까지 이어지는 성차별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름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원인이 지자체장의 성폭력이라는 것을 간결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 시국회의에 여성만 참여하는 점이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해 제안자들의 투표를 통해 ‘2021 미투선거 시국회의’가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제안자들은 시국회의에서 각자의 운동서사와 촛불 이후 정치권에 대한 10분 발표를 했다. 나는 첫 발제를 맡아 나의 중요한 운동서사인 ‘알바노동자 운동’과 ‘여성운동’에 대해 발제했다. 미투선거 시국회의에서 왠 알바노동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전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알바생’을 ‘알바노동자’로 불리도록 만들고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수준의 시간당 1만원으로 만들도록 요구하는 운동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알바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2013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 담을 넘고,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고,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가도 보면서 ‘일도 안 하면서 돈만 밝히는 배부른 청년들’이라는 욕을 먹어가며 최저임금1만원 운동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주장하니 민주노총이 응답했고,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1만원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2020년까지 최저임금1만원을 달성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바로 다음 해인 2018년에 자신의 공약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그리고 지난 해, 그러니까 대통령이 공약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 1만원이 이미 달성되었어야 할 2020년에 다시 한 번 최저임금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며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지난해는 코로나 사태와 맞물리면서 더더욱 공약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 지경이 되기 몇 년 전에 이미 자신의 공약을 폐기했다는 것이다. 상황적 핑계는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성평등, 여성폭력 의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을 계기로 들불처럼 일어나 거리로 나온 여성들에게 호응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지 3년이 지났다. 여성혐오적 도서를 두 권이나 출판했던 탁현민 전 청와대비서관이 스스로 사직할 때까지 사직서도 수리하지 않고 그를 끝까지 잡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하고 임신 주수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입장이었던 청와대,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발언 외에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여당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사회운동을 하며 정치권에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그 요구의 최종적인 실현을 정치권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이 어떤 사회운동이 주장하는 바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할 때 그 사회운동은 간단히 말해 ‘힘이 빠지게’ 된다. 하겠다고 하니까 기대를 가지고 일단 믿고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사회운동가들은 정치권을 감시하지만 많은 경우 정치인들은 그 기대가 무색하게 몇 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약속을 파기한다. 촛불 정부를 자처하고 나선 민주당 정권이 청와대와 국회 안에서 촛불의 약속을 하나씩 버리거나 후퇴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내 안에서도 오래된 정치혐오가 살아난다. 원래 정치는 이런 건가? 한국 정치에는 정말 답이 없나? 왜 책임을 지지 않지?

나는 가끔 우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은 것인지 특정 정당의 대통령을 뽑은 것인지 헷갈린다. 다행히도 이런 생각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투선거 시국회의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 대선 당시조차 ‘나중에’라거나 ‘동성애 반대합니다’라고 언급되었던 성소수자 차별과 정치권의 단계적 이행으로 후퇴한 장애인3대적폐정책(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운동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를 대하는 현 정권의 태도와 연결되어 아직도 갈길이 요원한 청소년 참정권 제한, 채용성차별과 성별임금격차, 청년 주거권, 동물권 문제까지 우리가 직접 정치적 목소리를 내어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1차 시국회의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국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한 번 더 열릴 2차 시국회의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이번 4.7 재보궐 선거에 대응할 것인지 실천전략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여성신문의 지면 이름은 [정치 판벌려]다. 이 지면의 이름처럼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는 정치권이 외면한 의제들을 다시 살려내고 정말로 페미니스트들이 판을 벌리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 중이다. 꼭 출마를 하지 않더라도 이 선거에 누구나 함께 대응할 수 있다면, 그런 정치적 연대를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국정치의 큰 진보가 아닐까.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주비위원.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