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다큐 <첫 변론> 개봉 규탄 기자회견 : 다큐 <첫 변론>과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어려움 (김가영 부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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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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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9일, 저는 부산에 계시는 여성분들과 <김지은입니다> 북토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되짚고 피해자와 연대하고자 내딛었던 부산에서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위력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무엇인지,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연달아 발생했던 권력형 성범죄에 일었던 분노를 딛고 일어서보려 했습니다.


폐허가 된 마음을 추스리던 순간, 갑자기 북토크에 참여하신 분들이 놀란 기색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박원순 전 시장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떴고, 본능적으로 성폭력 사안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 날 북토크를 준비했던 이들과 밤새워 울었습니다. 온 세상이 피해자를 비난할 것이 걱정되었고, 성폭력 없는 세상을 꿈꾸던 우리의 세계 역시 또다시 무너져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금 좌절을 딛고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여성들 앞에, 박원순 전 시장의 무고를 주장하는 다큐영화가 개봉한다고 합니다. 다큐 감독의 인터뷰는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척 하면서 2차 가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말로는 사건의 양측 주장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증거를 바탕으로 국가 기관의 판단이 끝난 사안에 가해자의 정황만 실컷 화면에 담고 있지 않습니까.


<비극의 탄생>의 저자와 <첫 변론>의 제작진,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이런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로부터 생존한 피해자를 2차 피해 속에 다시 가두고, 그와 연대했던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다시 멈춰 세우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성희롱, 성추행의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잊으려 애썼던 일상 속 성차별, 성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일입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모든 행위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비극의 재탄생’이고, 피해를 고발한 모든 이들이 가해자로부터 들어야 했던 ‘첫 변명’의 반복 밖에 되지 않습니다.


‘2차 가해라며 침묵을 강요한다.’라고 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 없지 않습니까. ‘2차 가해라고 질문도 못 하냐’고 하지만 성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질문한 적 있었습니까. 제작위원회 ‘박원순을믿는사람들’은 진실을 믿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붙잡으려는 것은 박원순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된 그들의 정치적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불행히도 그 신념은 가해자가 스스로 무너뜨렸고, 조직보위의 논리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요원하게 합니다.


저도 과거에 성희롱,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고, 어떻게 문제를 제기할지 몰라 침묵하기도 하고, 가해자에게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의 공간에서 아직도 권력형 성범죄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피해자와의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든, 가해자의 가해 사실은 결코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 변론>이 개봉을 하든 안 하든, 흥행을 하든 안 하든, 당신들이 인정하고 않으려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께도 호소합니다. 2차 가해에 줄 서는 일에 함께하지 마십시오. 내 주위 다른 이들이 호기심이라는 핑계로 2차 가해를 하려한다면, 단호히 안 된다고 하십시오. 우리가 2차 가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왜곡된 신념을 지키려는 자들이 스스로 무너지게끔 하는 길입니다.


또 다시 분노와 좌절의 폐허를 만든다고 해도, 피해자와 연대하는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진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첫 변론>의 개봉을 처절한 마음으로 규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