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다큐 <첫 변론> 개봉 규탄 기자회견 : 다큐 <첫 변론>이 불러일으킬 2차 피해 (김세정 공인노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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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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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김세정노무사입니다.

장맛비가 쏟아집니다. 빗길을 뚫고 다큐멘터리 <첫 변론>을 비판하고자 모여주신 여러 동지들, 비판의 목소리를 취재하고자 모여주신 기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그것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사회고발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기사를 찾아 읽으며 제가 생각한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변론> 포스터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는 문구가 써있던데요. 이 자리를 빌어 박원순을 믿는다는 분들에게 확실하게 전합니다.

얼마나 더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의 결정을 통해 박원순의 행위가 권력형 성폭력에 해당함이 수차례 확인되었습니다. 박원순이 가해를 저지른 그 순간부터 변호 되어야 할 명예는 없어졌습니다. 박원순은 죽음을 택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방어권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변호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과 법원의 판결문을 보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성희롱’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다수의 2차 가해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수차례 지적된 부분입니다만,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의 ‘성희롱’은 그 행위 정도가 비교적 가볍기 때문에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성희롱’은 업무나 고용 등의 관계에서 가해자가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행한 성폭력 행위를 뜻하는, 법에 정한 용어입니다. 법적 용어의 정확한 개념도 알지 못한 채 피해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희롱 판단에 있어 대법원은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며,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어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성희롱 판단에 행위자의 동기나 의도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으며,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대처와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법적 근거로 활용되는 기본 판례이며, 이 사건 관련 판결문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첫 변론> 제작 발표회에서 김대현 감독, 다큐멘터리 원작인 ‘비극의 탄생’ 저자 손병관 기자 등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피해자의 머리 속에만 있는 것으로 탁상공론한 것’, ‘인권위 조사는 굉장히 허술하고 어떤 의도를 가진 조사’,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 절대주의는 아니다’ 등의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우리 사법 체계에서 입증책임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어, 피해자는 매 순간 부정당하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누가 나서서 피해자를 탓하지 않더라도 피해 경험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입증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합니다.

박원순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망언은 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가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배척하는 것이며, 고결하고 무결한 피해만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고,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에 대한 증명뿐만 아니라 무결함까지도 증명하라는 책임을 씌우는 것입니다.

 박원순 사건을 비롯한 숱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세지는 아프고도 명백한 것들입니다.

여성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업무 다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 때문에 여성 노동자에게는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이 당연히 전가된다는 점, 남성중심적 조직문화와 위계구조에서 에서 여성 노동자의 ‘공적’인 친밀함은 ‘사적’인 것으로 쉽게 해석된다는 점, 따라서 여성 노동자의 신고는 진정성을 의심받는다는 점, 여성 노동자를 보호할 조치와 제도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노동자라면 누구나, 여성 노동자라면 누구나 안전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헌법에 기초한 당연한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입니다.

 다큐멘터리 <첫 변론>의 개봉은 박원순은 죽었지만 그의 위력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2차 가해입니다.

서사가 부여되어야 할 것은 가해자의 과거가 아니라 피해자의 오늘과 내일입니다.

논의되어야 할 것은 무엇이 성폭력인지 아닌지, 가해자의 의도가 어땠는지보다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전 사회적 반성, 권력형 성폭력에 관한 인식 변화, 제도의 개선, 궁극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방안입니다.

 마지막으로 <첫 변론> 제작 및 개봉 발표로 인해 상처 입으셨을 피해자분께 위로와 지지의 마음을 전합니다.

피해자분께서 쓰신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울면서 읽었습니다. 300쪽이 넘는 책을 보며 ‘이것은 살기위해 쓴 글이다’라고 느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펴내기까지의 시간이 피해 회복의 과정이었기를 바랍니다.

피해자분이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고, 급하게 채비를 하고, 부산스러운 출근길을 거쳐, 정신없이 일하고, 고단하게 퇴근하여, 친구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 고단하지만 가끔 행복한 보통의 일상을 살기를 바랍니다.

 책에 피해자분이 고 박원순을 추모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고 쓰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인용해서 발언을 마칩니다.

우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꿈을 함께 꿔요. 그 꿈이 현실이 된 세상을 함께 살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