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다큐 <첫 변론> 개봉 규탄 기자회견 : 업무상 성희롱 피해자 연대발언 (이소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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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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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즘당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노동자입니다. 노동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경험을 겪게 됩니다. 그 중에서는 불쾌한 경험도 있습니다. 바로 성희롱입니다.


성적인 사생활 질문, 칭찬이랍시고 하는 불쾌한 언행, 불필요한 신체접촉 등 참 다양하게도 겪었습니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거부감을 표하고 경고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 대응도 못 했습니다. 당황할 때도 있었고, 불쾌하지만 이게 성희롱인지 판단이 잘 안 될 때도 있었고, 주변 분위기 때문에, 또는 불이익이 걱정되어 넘어갔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저는 직장을 쉽게 옮겨 다니며 직장 내 성희롱을 오래 겪지 않을 수 있었고, 최근에는 운 좋게 별일 없습니다. 다만 성희롱 가해자들을 적절하게 처벌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성희롱이 너무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착잡합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피해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그 중 지인 한 분이 감사하게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하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지인은 노동조합에서 상근간부로 일하며 두 번의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작년 첫 번째 성희롱 가해자는 업무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는데, 술자리에서 마주쳐 불쾌한 발언과 신체접촉을 한 것입니다. 큰 곡절 없이 가해자를 즉시 제지하여 조치할 수 있었고, 불쾌했지만 괴로움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두 번째 성희롱은 처음과 달리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응원해주고, 아이디어를 사업 계획에 반영해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능력도 있고, 업무상 우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성희롱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신고하기로 결심하는 데에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해자가 맡고 있던 역할과 일을 잘할 사람이 있을지, 즉시 거부하지 못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닌지, 관계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지, 노동조합에 피해가 되지는 않을지, 작년에 이어 또 피해자가 된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거나 업무상 배제되지는 않을지, 수없이 고민하며 신고를 한 이후에도 한참 동안 불안해 했습니다. 지인은 두려웠지만,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동의했다는 오해가 퍼지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에 가해자의 잘못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인 자신의 목소리를 계속 내었고, 그 결과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가해자의 잘못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았습니다. 그렇게 가해자는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인은 이거면 됐다고, 이제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똑바로 사과한다면 진심으로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해자 또한 여느 가해자들처럼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인은 자신이 증명해 온 업무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성적 대상으로만 여겨져 명예가 침해 당한 것이 가장 괴로웠고, 피해 목소리를 내고 나서 자신을 불편해 하고 피하는 사람들이나 본의 아니게 2차 피해를 주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함께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안정을 찾고 버텨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인이 속했던 이 노동조합은 가해를 직시하고 피해자에게 연대하며 정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보여집니다. 직접 겪어본 사람이라면, 피해 사실을 말하고 연대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도덕성을 추구하는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들이 바로 그 도덕적 이미지를 지키고자 은폐되는 일이 허다하고,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 체계 때문에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는 등, 정의 구현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바꿀 수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피해자에게 관심을 갖고 연대하면 됩니다. 그러면 됩니다. 우리는 바뀔 수 있습니다.


성희롱은 특정 몇 명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찾아보았는데 민간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여성 중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비율이 37.7%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3분의 1 이상이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직장갑질119'에서 진행한 조사는 여성 대상이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연히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매사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2차 가해는 가해의 범위가 넓고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더욱 쉽게 가해 상황이 벌어집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어떤 언행이 가해인지, 무엇이 피해자를 위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가해자에게 책임을 오롯이 물을 수 있을지, 배우고 생각하고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끈끈한 연대와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라며, 2차 가해 그 자체인 영화 개봉을 규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