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정치개혁에서 페미니즘 관점이 필요한 이유(황연주 사무국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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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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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정치는 이성애, 비장애인, 고소득층, 고연령, 고학력, 특정직업 등 특권층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평균 55세 남성의 얼굴을 한 국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화하고 있을 뿐, 성폭력‧불법촬영‧스토킹 등으로부터 안전한 일상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에, 기후위기와 코로나 감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외침에,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일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년 남성의 얼굴을 한 정치는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이고 현실입니다.


20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한국 정치는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탄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정치권이 기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바라보고,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금기어 취급하고, 관련 법안과 논의들을 차일피일 미룬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를 비롯한 한국사회가 마주한 차별과 혐오의 정치는 일부 소수 정치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를 외면하고 방조한 정치권 전체, 특히 남성 정치인들에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정치, 국회의 문제는 양극화라고 합니다. 양극을 달리며 어떤 논의도 진전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말 양극을 달리기 때문에 논의가 어려운 것인가요? 아니면 소수자를 배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공통의 이익으로 똘똘 뭉쳐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현재 국회에서 정치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여러 가지 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제도를 택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이, 정책들이, 가치들에 변화가 없다면 그래서 정치의 행태도 문화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치의 얼굴이 평균 55세 남성에서 다양한 얼굴로 바뀌었을 때,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입법에 반영하고 논의할 때, 궁극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유예해 온 민주주의의 기본관념이자 이상인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데 진정 다가갈 수 있을 때 그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선거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제도는 성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기존의 정치문화가, 이 사회가 남성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권력과 자원을 가동하는 데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 개혁 논의만으로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다양성 확대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목표를 달성하고 국회의 얼굴을 바꾸고 실질적으로 사회의 부정의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관점이 정치개혁 논의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철되어야 합니다.


페미니즘 정치를 가로막는 것은 비단 정당법만이 아닙니다. 여성대표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할당제, 정상가족 중심에 근거한 선거운동 기준, 거대정당과 남성후보들에 유리한 선거운동제도와 선거자금제도, 유권자의 정치참여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선거법, 그리고 여성과 소수자가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정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까지 많은 것들이 논의되고 바뀌어야 합니다. 성평등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과제 실현을 위해, 양당 남성정치 지배의 구도를 깨기 위해, 페미니스트 정치가 탄생할 수 있기 위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여기 함께 모인 인들과 지속적으로 페미니스트 정치개혁을 요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