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시리즈 논평 - 1] 여성혐오가 죽였다 (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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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2 10:21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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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자가 죽었다. 지난 14일 오후 9시경 서울 지하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순찰을 돌던 역무원이 살해당했다. 범인 전주환은 피해자와 입사 동기로,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부터 불법촬영한 피해자의 영상을 유포하겠다 협박하고, 자신과 만나달라 강요하고,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며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에 피해자는 범인을 신고하였고, 그 결과 전주환은 불법촬영과 스토킹 혐의로 징역 9년형을 구형받은 상태였다. 전주환은 선고를 앞둔 전날 흉기를 준비하여 1시간 넘게 피해자가 화장실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신당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 장관 김현숙과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이상훈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김현숙 장관은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강력한 스토킹 살인 그런 사건"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말하고 싶다. 이 사건은 여성이 겪고 있는 사회적 차별을 이용했다. 또한 자신과 사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성으로서 할 수 있는 폭력적 행태를 부리며 범죄까지 저질렀다. 그러니 김현숙 장관의 발언은 틀렸다. 여성이 겪는 차별과 젠더폭력 속에 여성혐오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여성혐오는 너무도 뿌리 깊기 때문에 여성 관련 사건에서 여성혐오를 분리시키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없었다면, 수많은 여성이 겪는 범죄의 심각성을 모두가 인지하고 제때 제대로 처벌했다면, 전주환은 피해자를 죽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면, 여성혐오에 대한 연구와 법적 정의만큼이라도 실효적인 결과를 내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장관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상훈 시의원의 발언은 더 가관이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고 하니까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은데요"라며 가해자가 31살의 청년이고 열심히 살았을 서울 시민이라며 가해자에 이입했다. 가해자에 대한 연민은 차치하고서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안 받아주는 것과 폭력적인 대응을 연관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한심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안 받아줬다는 이유만으로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검색창에서 ‘왜 안 만나줘’를 검색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매일매일 몇 건의 살인 사건이 똑같은 이유로 일어난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단순한 치정으로 치부하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여성들은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시의원씩이나 되는 자가 자연스럽게 저런 발언을 하는 걸 보면 이 나라의 시민의식이 어떤지 암담하다. 이상훈 시의원은 도덕적 관점과 성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사과문 쓰는 법도 공부하길 바란다.
불법촬영, 스토킹으로 시작하여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안일하게 방치한 사법부와 서울교통공사를 보라. 남성이라면 죽었을까.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면 전주환이 그리 쉽게 지속적인 범죄를 저질렀을까. 불법촬영을 하고,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스토킹을 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받게 된 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죽여야겠다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 전주환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한 것이다. 불법촬영물을 유포했을 때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받으며, 삶 자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전주환은 그런 사회적 현상을 알고, 자신의 협박이 유효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힌 것이다. 스토킹과 살해 과정에서 역으로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피해자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의 안전을 위해 여자 화장실 순찰을 하던 역무원마저 살해를 당하는 이 상황에, 여성들은 이제 지하철 화장실마저 가고 싶을 때 편하게 갈 수가 없다. 남성들은 공중 화장실에 가며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가. 이 지점만 생각해 봐도 사회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명백하다. 여성혐오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서구에서 혐오 범죄가 어떻게 분류되는지 여성들이 몰라서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다. ‘혐오’라는 단어가 아니면 이렇게 여성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사회 구조를 지칭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여성혐오 범죄’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단순히 살인 통계만을 놓고 보면 남성 피해자와 여성 피해자의 수가 비슷해 보인다. 한국은 죄명을 기준으로 통계를 내기 때문에, 살인의 의도를 갖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만 살인으로 포함한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스토킹 같은 젠더기반 폭력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만약 영미권이나 유럽처럼 가해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통계를 작성한다면 남성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여성의 숫자는 훨씬 커진다. 우발적 살인, 과실에 의한 살인이나 안락사, 영아 살해 등도 살인 범죄에 포함한다고 가정하면, 2018년 살인뿐만 아니라 강력·폭력 범죄로 숨진 여성의 수(325명)는 최대 인구 10만 명당 1.26명으로 계산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OECD에 가입한 38개국 가운데 9번째로 여성이 많이 살해되는 나라가 된다.
계속해서 여성들이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왜 남성들이 여성들을 죽이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동료 시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본인을 무시하거나 본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살인이나 폭력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명백히 여성이라는 약자만을 향한 범죄다. 명백히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차별을 이용한 범죄다.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면 무엇이 혐오란 말인가.
참고한 글 : 이정규 기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살해됐는데요?, 한겨레21, 2021.12.22일자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