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페미니즘당 논평]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 백래시의 시대에서 페미니즘의 의미를 생각하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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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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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는 2021년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논평의 후속으로 매월 정기적으로 논평 시리즈를 이어서 게재합니다. 매월 대표단에서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논평을 게시합니다. 6월의 논평은 백래시의 시대 페미니즘의 의미를 스스로 돌아보는 케이의 글입니다.


페미니스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불평등을 인지하는 눈을 갖춘 페미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페미니스트. 나의 경우는 후자다. 나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불평 없이 '개념녀'로 살았다. 그러던 내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마주하고 말 그대로 헤까닥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렸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자, 엎어져 있던 트럼프 카드가 휙 뒤집히듯 눈앞의 세상이 확 바뀌었다. 수많은 분노와 우울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이듬해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렇게 잔뜩 흔들리며 페미니스트로 사는 동안, 세상에는 참 많은 사건과 논란과 갈등이 있었다. 사회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퇴보하고, 또 다시 진보하였다. 그 속에서 여성주의가 이뤄낸 성취에 감격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그보다 자주 분노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페미니즘을 '남성중심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여성의 권익 신장을 논하는 신념'이라 말하고, 네이버 지식백과는 '성차별과 불평등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사상'이라 정의한다. 나의 페미니즘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의미에 가깝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결코 지워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여성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차별의 원인은 성별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 권력, 재산, 장애 여부, 성적 지향 등에 따라 차별받는다. 이렇게 차별의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 역시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가령 나의 경우 여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이지만, 비장애인이라는 점에서 기득권을 가진다. 또한 이러한 권력은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인데, 20대 청년인 나는 기성세대와 비교했을 때 사회적 약자이지만, 비청소년이라는 점에서는 청소년에 비해 나이권력을 갖는다. 세상에는 무조건 약자인 사람도, 또 무조건 강자인 사람도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권력의 복합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불평등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성별에 따른 차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사회에서 제일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인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불평등을 없애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페미니즘의 기조는 어디로든 확장될 수 있다.

나의 페미니즘은 지난 몇 년간 다른 줄기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노인, 아동, 그리고 비인간동물, 자연 환경까지. 그래서 나에게 페미니즘은 모든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자, 모든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나는 반전(反戰)을 지향하고, 어설프게나마 비건이 되려 노력하고, 기본소득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 말이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내가 정의한, 내 고유의 '페미니즘'을 갖고 있었기에 뜨거운 감자가 되는 이슈를 만날 때도 금방 주관을 가질 수 있었다. MTF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하는 것이 반대에 부딪혔을 때, 성소수자 군인끼리의 성관계가 범죄라고 규정됐을 때, '성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성매매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됐을 때. 내가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을 세우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이 상황에서 좀 더 힘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폭력의 특성을 생각하고, 서로의 힘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한다는 것, 또 가능한 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내게 페미니즘의 키워드는 평화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난 이후로 언제나 분노하고, 자주 싸우던 나였기에 페미니즘과 평화를 연결 짓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싸우고, 곱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이유는 결국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면서 내면의 평화를 얻고 싶다는 마음으로 페미니즘을 외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또 페미니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페미니즘을 키워드로 나타낸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페미니즘이 있다. 수많은 각자의 '페미니즘'이 만나, 페미니즘이라는 일반명사를 구성한다. 그 틀 안에 나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의 중요한 기조 중 하나는 배제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페미니즘 안에서 그저 꾸준히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그 공감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페미니즘과 만나고 때로는 부딪히면서, 우당탕탕 서로 대화하면서 살아나가고 싶다.



2022. 6. 30. 

페미니즘당 창당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