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페미니즘당 논평] 모든 약한 존재들에게 (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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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1 09:38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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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는 2021년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논평의 후속으로 매월 정기적으로 논평 시리즈를 이어서 게재합니다. 매월 대표단에서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논평을 게시합니다. 5월의 논평은 페미니스트들을 위로하고 연대를 독려하는 다혜의 글입니다. |
5월의 논평 차례를 맡아 매우 고민을 했다. 어떤 키워드나 주제 없이 써보는 글은 처음이라서 뭘 써야 할지 생각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졸업 논문을 쓰는 것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얘기를 좀 꺼내보려 한다.
논문 주제가 '페미니즘과 20대 여성'이어서 20대 여성들과 인터뷰를 여러차례 진행했다. 그래도 노력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희망, 이렇게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분노, 그리고 이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하는 절망. 그렇게 매스컴에서 주목하는 20대 여성들은 대통령 선거 이후로 여러 가지 감정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듯 했다.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은 우울과 절망이다. 예전에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 있다는 생각보다는 외롭다는 생각 뿐이다.
불법촬영이 범죄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까지 7~8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법촬영은 활개를 치고 있고,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 ‘N번방’의 두 주동자가 검거된 후, 해당 불법촬영물을 다운받거나 이용해서 기소된 건 고작 3백여 명이다. ‘N번방’과 ‘박사방’의 가입자만해도 26만 명이었는데 실제 정식 재판을 받은 건 그게 전부였다. 더욱 황당한 건 그들 모두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초범이라서’, ‘반성하고 있어서’, ‘나이가 어려서’ 같은 이유였다. ‘N번방’에서 유통된 음란물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딥웹, 다크웹에 퍼져서 해외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난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 과연 생각이나 할까?
상황이 이런데 여성 인권의 어디가 나아졌다는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있는 것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처음에는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지방선거에 나온 후보들 면면을 보니 무시당하고 있는 건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관악구 불법촬영 감시 및 점검에 사용되는 허위예산 전액 삭감하겠습니다(관악구의원 후보자 최인호)”, ”현 서울교육감이 발표한 2022 성평등 기본계획이나 성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의 자료를 보면 아이들이 동성애를 혼인의 형태로 착각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서울시교육감 후보 조진혁)”
어떠한 가공도 없이 후보들이 직접 한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건가 싶다. 한 번도 내가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차별로 인한 피해자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공적인 발언으로 저렇게 당당하게 혐오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예전엔 주위 눈치가 보여서 쉽게 하지 못했던 말도 이젠 다들 숨기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건 잘못된 거다, 혐오 발언이다’ 라고 말해줘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한때는 대선 후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외로운 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내가 여기에 있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면서도 살아 남은 모든 약한 존재들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백예린 씨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라는 노래의 가사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우리에게까지 온 건지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우리 사이에 큰 상처로 자라도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