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2022인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 발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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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4 15:22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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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이가현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집결지의 대표적인 장소로 불리우는 청량리 근처에서 오랜시간 살았습니다. 소위 588이라고 불리는 번짓수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초등학생들에게조차 공포와 혐오의 숫자였습니다. 어른들이 588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588에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았다가 아무 말도 없이 끊는다더라 하는 괴담같은 것이 돌았고, 저에게 성매매여성은 처녀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무서운 모습으로 상상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매매여성을 만나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상상속 성매매 여성은 어떤 이미지였나요?
가정을 파괴하는 가정파괴범?
구매자에게 사기를 쳐서 큰 돈을 갖고 사라지는 사기꾼?
구매자에게 성병을 감염시키는 성병캐리어?
쉽게 돈 벌어서 쉽게 쓰는 사치스러운 여자?
범죄를 저지르고 약물을 복용하는 악마같은 여자?
무엇이든 나쁜 것들로만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성매매여성들은 정말 가정파괴범이고 사기꾼이고 사치를 일삼는 성병캐리어일까요? 아니요. 성매매여성들에게도 가정이 있고, 약점이 잡혀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훨씬많고, 집이나 방이라고 볼 수 없는 쪽방에 살기도 하고, 구매자에게 콘돔을 끼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실과는 반대되는 편견을 조장해 성매매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래야 성구매를 하는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들도 자발적으로 돈 쉽게 벌려고 몸팔았으니까 구매한 우리는 잘못이 없어 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함부로 특정한 이미지, 그것도 불결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이자 차별입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은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두렵다고 합니다. 성매매여성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이력이 밝혀진 여성에게 다른 일을 시킬까요? 성매매가 쉽게 돈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성매매여성이 구매자에게 맞거나 살해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성매매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성구매 남성들이 살해를 결심한 이유는 대개 사소합니다. 가해자들은 성매매 대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의정부지법 2016고합○○○), 피해자가 30만원을 가져갔다가 안 돌려줬다는 이유로(의정부지법 2016고합○○○), “(상대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어서(부산지법 2016고합○○○), 돈을 지불했는데도 관계를 거부해서(수원지법 2016고합○○○), 성매매 대금 환불을 요구했는데 주인이 거절하자(광주지법 2019고합○○),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들어서(인천지법 2016고합○○○, 대전지법 2019고합○○○) 성매매 여성을 살해했습니다. 심지어 성매매 대가로 지불한 8만원을 다시 빼앗기 위해 “40만원을 주려고 뽑아놓았다”며 피해자를 재차 모텔로 유인한 뒤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했습니다.(인천지법 2019고합○○○)
지난 해 여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노래방 도우미’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을 기억하십니까. 두 여성은 모두 강씨가 자수할 때까지 실종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성매매 여성이나 유흥업소 등에서 일하는 여성은 언제든 강씨 같은 이를 마주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실종되거나 살해당해도 이런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 ‘범죄’로 인식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강력범죄의 위협 앞에서 가장 취약한 피해자가 됩니다. 살해당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대구의 홍준연 구의원은 성매매 여성을 위한 탈성매매 지원금을 두고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며 쉽게 돈 번 사람에게 혈세낭비를 할 수 없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지역정치가 먹여살리고 돌봐야 하는 시민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봤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 이들은 차별해도 된다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성매매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성구매 의혹이 있었던 이재명 후보의 아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별 탈 없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너그럽게 넘어갔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니까 아버지는 믿어야겠답니다. 성매매여성에게는 우리 사회가 절대 허락하지 않는 신뢰죠.
성매매는 나쁜 것인데, 성매매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면 성매매가 지속되지 않겠느냐고요? 대한민국이 여성들이 차별받고 욕을 먹어서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아마 성매매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성매매는 빈곤의 문제입니다. 돈을 벌어야 해서, 먹고 살아야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갑자기 많은 빚을 지게 되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수많은 악조건들이 여성들을 성매매 현장으로 떠밉니다. 유흥업소에서, 모던바에서, 랜덤채팅어플에서, 생계를 위해 또는 당장의 잘 곳을 구하기 위해 성매매 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보지않고 이미 차별과 억압속에 놓인 사람들을 더 못살게 군다고 해서 성매매가 사라질리 없습니다.
저는 성구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멈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가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폭력에서 빠져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성구매를 멈추고, 빈곤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매매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영역에서 보이지 않도록 배제하고 차별하고 혐오해왔던 그동안의 사회를 바꿔야만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성매매여성이 받는 차별을 없애고, 보이는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가진 존재로서, 생명권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합시다. 성매매여성, 빈곤여성이 받는 억압과 낙인의 세계를 끝내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한발짝 더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