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페미니즘당 논평] 갈라치기는 정치가 아니다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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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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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는 2021년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논평의 후속으로 매월 정기적으로 논평 시리즈를 이어서 게재합니다. 매월 대표단에서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논평을 게시합니다. 3월의 논평은 혐오를 조장하는 갈라치기 정치를 비판하는 여진의 글입니다.


지난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선거 기간 내내 청년 세대를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전략으로 혐오를 조장했던 후보이기에 나를 비롯한 2030 여성들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앞으로 여성혐오가 하나의 성공적인 선거전략으로 자리잡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당선 후 20여일이 지난 지금도 성별 갈라치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23차에 들어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 대해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시민을 볼모로 삼는 불법적인 시위’라는 등 전장연의 행동을 비판하는 글을 sns에 수차례 게시했다. 여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준석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 하는 글과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준석은 이렇게 출근길 비장애인을 ‘볼모’로, 장애인을 가해자로 만듦으로써 또 다시 혐오를 조장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책은 외면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정치인이라고 부르는게 맞는가?


대선 내내 이준석 당대표를 필두로 한 국민의힘은 ‘이대남’이라 불리는 20대 남성 중에서도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대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전략은 2030남성들을 결집시켰고, 윤석열은 20대 남성들에게 58.7%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전략은 2030남성들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2030여성들에게 반페미니즘을 옹호하는 후보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던 여성들도 ‘윤석열 떨어뜨리기’로 투표 목적이 변하기도 했다. 이들의 표는 대부분 민주당으로 흘러들어갔고, 이재명 후보는 20대 여성들에게 58%라는 득표율을 얻었다. 이준석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의 최종 목표 세대 포위론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20대와 60대 지지층의 표로 30~50대의 표를 포위하자고 주장했지만, 20대 여성들의 투표율은 무시하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남성 표는 20대 여성 표로 상쇄되어 버렸고 결국 이 전략은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윤석열 당선의 가장 큰 공은 60대 이상 유권자와 강남 3구를 비롯한 전통적인 지지층들에게 있었다. 


선거에서 갈라치기는 절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갈라치기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선거전략이다. 불특정 다수를 적으로 만들어 나머지를 결집시키고 이용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다. 과거 지역갈등이 있었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반공을 내세워 안보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선거에서 표를 얻기도 했다. 선거를 단순히 이기기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갈라치기는 좋은 ‘선거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갈라칠지 잘 선택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선거는 승자를 가리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정치는 사회 갈등과 혐오를 해소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정치권이 갈라치기를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이렇게 얻은 권력은 유권자들의 삶에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준석의 ‘세대 포위론’이 결국 아무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처럼 성별 갈라치기는 심지어 효과적인 선거전략도 아니다. 이준석 본인은 선거전략으로 갈라치기가 효과적이었다고 여겨 계속 이용하려고 하지만 갈라치기는 두번 다시 전략처럼 이용 되어서는 안된다. 갈라치기는 정치가 아니라 약자를 향한 혐오를 재생산할 뿐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갈라치기는 혐오의 구조적 문제를 지우고 개인간의 문제로 만들어 그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마치 내가 상대편을 눌러버리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될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사회는 제로섬게임이나 파이뺏기가 아니어서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고 내가 이득을 보지 않는다. 갈라치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애초에 구조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와 문제를 해결할 의지라고는 없는 게으른 정치권 뿐이다.


갈라치기의 최악의 지점은 분열의 대상이 약자들이라는 점이다. 늘 강자들은 분열의 대상이 아니었다. 부자들과 대기업은 싸우지도, 싸움 붙여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로 자영업자와 노동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년여성과 청년남성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도 약자인 사람들은 더 고통받는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윤석열 후보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20대 남성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 공약때문에 윤석열을 뽑았다는 사람들 중에 여성가족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여가부 폐지를 지지하는 남성들 중 어떤 사람은 여성가족부로부터 지원을 받았거나 받고 있거나 받을 예정인 사람일 수도 있다.하지만 여성들에게 ‘여성가족부 폐지’는 손해를 넘어 위협으로까지 다가온다. 저소득층 여성청소년은 생리대를 지원받지 못하고 성폭력 피해자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지다시피 하게될 것이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미혼모/미혼부 지원 또한 끊길 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 폐지의 근거가 부처의 실책이나 부족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자신의 역할이기도 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부처 자체가 남성혐오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박살나야 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가족부 폐지’ 는 단순한 정부부처 개편이 아니라 여성과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혐오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개인은 수많은 교차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개인이다. 이러한 개인을 선거를 위한 전략적 목표물로 납작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권은 당선을 위한 갈라치기 전략을 즉시 폐기해야하며 유권자들은 스스로 그 전략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곧 6월 지방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갈라치기를 전략으로 하는 이들은 이제 무엇을 갈라칠 것인가. 이번도 성별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가져올 것인가. 다음에 갈라쳐질 대상은 또 누구란 말인가.


2022.3.30.
페미니즘당 창당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