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⑥] 남성에게는 성차별과 투쟁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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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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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논평은 페미니즘의 사유가 필요한 남성들에게 연대를 요청하고,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가현의 글입니다.


 




1. 페미니즘 ‘대중화’가 맞나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자신의 저서 『페미니즘 : 주변에서 중심으로』 에서 남자를 ‘투쟁을 함께하는 전우’로 명명했다. 그는 여성해방주의자들이 모든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했지만 남성에게는 성차별과 투쟁해야 할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남성들이 성차별주의를 어떤 식으로든 영속시키는 것을 강조하느라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지 않고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벨 훅스의 지적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과도 만난다. 우리는 지난 몇 년을 페미니즘의 대중화 시기라고 불렀지만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이슈는 남성에 의한 여성폭력 철폐였다. 따라서 가해자로서의 남성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페미니즘 담론은 형성되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왜 남성에 의해 주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토론이나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토론은 커녕 문제를 외면하거나 페미니즘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거나, 텔레그램n번방의 동시접속자가 26만명이라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주장될만큼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스트의 관점은 등장하지 않았다. 꾸준히 모임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페미니즘을 실천해오던 남성들은 존재했지만 이들은 집단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남성들은 남성 주류담론에서도, 페미니스트 정치세력화의 과정에서도 ‘주체’가 될 수 없었다.



2.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운동은 계급운동과 종종 비교되곤 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권력관계가 가부장제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님과 함께하는 계급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지론이다.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마르크스주의처럼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단순화한다면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불가능하며 실천하게 되더라도 운동의 후퇴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으로부터 가장 크게 비판받는 지점은 바로 그런 ‘이분법’에 있다.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고, 유산자와 무산자로, 정과 반으로 구분하는 단순함 말이다. 이분법을 넘어서서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요한 고민이기도 하듯이 남성은 억압자, 여성은 피억압자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말을 남성들이 성차별과 무관하다는 말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극우정치가 여성혐오를 전략삼아 남성들을 주체로 불러들일 때 남성 억압자와 여성 피억압자 도식은 재생산된다. 할당제는 ‘역차별’이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것이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주장은 성평등과 성차별의 역사적 맥락을 지우고 단어를 오용하는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바꿔 지원이 필요한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할 뿐이다. 이러한 이분법과 혐오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 페미니즘 정치는 무엇을 해야할까. 극우정치에 호응하는 남성들을 규탄할 것인가, 아니면 남성도 페미니스트 정치세력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할 것인가. 



3. 남성성 다시 빚기


많은 남성들은 페미니즘 실천의 한 방법으로 행동양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멘토나 롤모델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왔던 586 정치인 안희정과 박원순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들이 본받을 수 있는 롤모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부하직원에게 가한 성폭력이 알려지면서 그들은 더 이상 페미니스트 남성성을 대표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모순적 행동으로 인해 ‘남페미는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페미니스트로서의 남성성을 훼손하는 데에 일조한 것이다.


남성성 연구자 한태경은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천착하지 말고 ‘남성성’이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태경의 말에 동의하며 페미니즘 정치는 극우정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남성성을 제시해야 한다. 여성혐오적 유튜브 컨텐츠가 남성들의 주류 문화로 승인받고 있는 아노미 상태에 개입해야 한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짓누르기 위해 동원되는 군대와 병역 문제에 대해 페미니즘적인 공론장을 형성해야 한다. 가장 가깝게는 혐오와 차별을 내재한 병역제도의 변화를 촉구하는 당사자로서 한국 남성은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에 각을 세우며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페미니즘 정치는 거기에서 멈춰선 안 된다. 백래시에 동의하지 않고 방황하는 남성들을 페미니즘의 품으로, 우리의 동지로 조직해내는 것도 페미니즘 정치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앞으로 어떻게 잘 해볼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벨 훅스의 문장을 끝으로 백래시와 페미니즘 시리즈 논평을 마친다.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자들은 좀 더 목소리를 높여 공개적으로 성차별적 억압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남성들이 성차별을 종식하려는 투쟁에서 여성과 똑같은 몫으로 책임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가 뿌리 뽑으려는 성차별적 대립을 그대로 반영하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 : 주변에서 중심으로』, 벨 훅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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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