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⑤] 여기 여성이,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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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6 00:00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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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네 번째 논평은 대선 정국에서 성별 갈라치기로 선동과 혐오의 정치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케이의 글입니다. |
'여성가족부 폐지'
지난 7일 윤석열 후보의 SNS에 올라온 이 문장을 읽고 두 눈을 의심했다. 이전에 내세웠던 '양성평등가족부'보다도 후퇴한 공약이다. 처음에는 성별이분법적인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더니, 이제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부처를 아예 폐지하겠다고 말한다. 왜 폐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폐지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알맹이 없이 자극적인 단어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이 문구를 과연 공약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윤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성별 갈라치기를 택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러한 백래시는 분명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20대 남성, 소위 '이대남'들이 윤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지지율이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지지율 증가를 강조해서 보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사람들이 성별 갈라치기의 문제점 대신, 지지율 증가라는 결과에 주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성별 갈라치기는 효과 좋은 선거전략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것이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백래시라는 점은 잊힌다. 결국 의도했든 아니든 언론에서 이 백래시의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키는 것이다.
언론이 20대 여성과 남성을 각각 '이대녀', '이대남'으로 호명하며, 대결구도를 조성하는 것 역시 성별 갈라치기의 일종이다. 과거 대선에서 지역주의로 호남과 영남을 갈라쳤듯이, 지금은 페미니즘으로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고 있다.
앞서 정치인의 백래시에 언론이 화답했다면 이번에는 언론의 백래시에 정치인이 화답한다. 이재명 후보가 한 번은 여성혐오 성향이 짙은 커뮤니티인 '펨코', '디시인사이드'에 직접 글을 남기고, 한 번은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닷페이스'에 출연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 후보는 이러한 행보를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각각을 '이대녀'와 '이대남'의 진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결국 성별 갈라치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사실 대선 후보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5·60대 중산층임을 생각하면, 청년 남성이 동질감을 느껴야 하는 쪽은 오히려 같은 세대인 청년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대결구도를 조성하여 청년층을 분열시킨다. 성별 갈라치기는 '이대남'이 심리적 우위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 된다. 이런 방법이 먹힐 때, 후보가 내거는 공약의 실효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문장은 남성에게 유용해서가 아니라, 여성에게 해롭기 때문에 열띤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한편 백래시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러한 조직적 혐오를 멈추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를 “추상적인 것”이라며 일축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구체화, 제도화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의 말처럼, 우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강력범죄 피해자 중 88%가 여성이고 가해자 중 96%가 남성인 경찰청 통계 앞에서, ‘여자라서 죽었다’는 말은 절대로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남자라서 죽지 않을 수 있는 이 대표는 이렇게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는 동시에, 일부 남성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줌으로써 이들을 ‘이대남’이라 호명되는 세력으로 조직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눈치를 보고 성별 갈라치기에 적극적으로 앞장 서는 것은 이러한 집단의 심각한 백래시 때문이다. 이들이 가하는 백래시 중 하나는 페미니즘을 '남성혐오', '남성차별'을 뜻하는 단어로 오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적인 곡해를 마주하면, '남성혐오'는 성립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아득해지기만 하다. 백래시의 가장 큰 해악은 혐오를 키우는 과정에서 논의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백래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과연 우리를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로 생각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물론 우리는 적어도 투표권만큼은 1인1표로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선 현장에 내 입장을 대변해주기는커녕 우리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후보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의 선거권이 평등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뽑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선택을 하는 것은 과연 언제쯤에나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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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