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④] 우리가 세상을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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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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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네 번째 논평은 차별금지법과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백래시에 관한 다혜의 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가톨릭 성경 요한 복음 16장 33절).” 


지난 봄 직장 근처를 산책하다가 놀랄만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 늘어선 조화행렬이었다. 다소 괴이해 보이는 시위를 하는 이유는 바로 서울시 교육청이 제정하려는 학생인권 종합계획에 반대해서였다. 반대 이유는 간단했다. 학생인권 종합계획에 포함된 성적지향과 관련된 부분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시위하는 단체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주변인이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그들의 가족이, 소중한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도 그렇게 반대 시위할 수 있을까? 조화들은 퍽 어울리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런 시위를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인권 교육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법제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 2021년 12월 15일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내보낸 보고서에 실린 말이다. “전면적으로 법을 강제하기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아 좀 더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지난 12월 14일 윤석열 후보가 관훈토론회 에서 한 말이다. 이재명 후보 역시 지난 11월 8일  한교총 간부들과의 만남에서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이고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일방통행식의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따라오는 꼬리표는 바로 이 ‘사회적 합의’이다.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아직’은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적 지향은 제외’ 하자는 말이다. 혐오세력들의 반대 논리가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면 그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는  해야겠고, 눈치는 보이니 내놓은 말도 안되는 타협안이다.


나는 최근까지도 국민들이 대부분 차별 금지법에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 국민의 70%는 차별 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2020년 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이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차별금지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입법 청원도 10만명을 넘긴지 오래다. 합의는 이미 되어가고 있는데 정치권은 의지가 없다.


인권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지 벌써 14년째다. 2013년까지 7건의 법안이 발의 되었지만, 법안심사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행정부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노력도 미진했다. 정치권이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혐오세력은 보수 기독교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극우 세력의 중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개신교 단체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세력화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인권운동 및 퀴어축제 등에 나타나 난동을 피웠고, 대중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반공주의와 근본주의를 핵심으로 하던 이들 단체가 빛바랜 반공 이념을 보조하기 위해 선택한 외부의 적이 바로 ’여성’, ‘성소수자,’이주노동자’,’난민’ 이다. 혐오를 동력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각종 보수 개신교 유튜브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수천건의 혐오발언와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컨텐츠들이 신자들을 통해 돌고 돌면서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여론을 과대 대표 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자화자찬 하는 천주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4월 생명주일을 맞은 담화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생물학적인 성의 구별을 거부하고 자신의 성별과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념”이라면서 “이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창조하시고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게 하신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한국 천주교는 신자들을 동원해서 임신중지 관련 법 제정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지속적으로 임신중지를 처벌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에 앞장서 왔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지금까지도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내가 지금 2021년을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미국에서 최초로 임신 중지가 여성의 권리라고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판결이 1973년에 있었다. 미국 정신 진단 매뉴얼에서 ‘동성애’가 삭제 된 것은 1972년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한 종교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에서 보여주는 현실 인식이 미국의 1970년대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정말 개탄스럽다. 


성탄절을 맞아 줄지어 교회나 성당으로 향하는 정치인들과 사람들을 보며, 저 중에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이들도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런 이들은 무얼 위해 기도를 하러 가는지 궁금했다. 죽어서 천국에 가려고일까? 천국을 바라는 이들이 되려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페미니즘은 교차하는 모든 정체성을 긍정하고, 차별과 혐오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머리가 길든 짧든, 성별이 무엇이든,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존엄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 당연한 사실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명분도 이제는 없다.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는 “과거 여성들은 이목에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한 의제가 분명하게 있고, 눈치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대중이 동원되고,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확신만 있으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었다. 지난 200년간 이 세 요소가 맞아 떨어진 몇 안되는 경우에, 여성들은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 새해에도 고난은 예상되지만, 평등과 존엄을 위한 페미니즘의 물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백래시는 반드시 실패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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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