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③] 백래시, 변화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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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30 09:51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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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세 번째 논평은 대선과 백래시에 관한 소윤의 글입니다. |
‘알아, 너 페미인 거.’
어느 날, 나름 친했던 자에게 들은 말이다. 그 짧은 말에 기분 나쁨을 잘도 표현하였다. 왜 기분이 나빴을까. 나는 단지 이번 대통령 선거가 걱정된다고 한 것뿐이었다. 아마도 백래시가 아주 세차게 왔나 보다.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고, 제도권에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백래시 역시 커지고 있다. 백래시는 기사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내가 얼마 전 겪은 일처럼 일상에서도 흔하게 느낄 수 있다. 수많은 백래시 중, 내가 요즘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대선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의 행보와 발언이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리라. 생각을 결정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후보들의 행보나 발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는 아주 약간의 설렘과 한가득한 걱정을 가지고 대선 후보들을 지켜보았고, 분노만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두 당의 후보들은 실로 가관이다. 정치권에 영향력을 점점 키우고 있는 2030 청년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아 선거운동을 하려는 건가 싶지만, 그 행보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2030 전체가 아닌 ‘일부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니 말이다. 두 후보는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반페미니즘을 조장하고 젠더갈등을 키우고 있다. 한 명은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는 내용의 글을 함께 읽어 보자 하고,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내용의 글을 회의에 내놓는다. 다른 한 명은 기소율이 0.78%(2019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 성폭력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두 명 모두 남성 중심적인 이유를 대며 여성가족부를 개편하겠다고 한다. 현재의 페미니즘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짧은 생각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안에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다.
5년 전 대선을 기억하는가. 그때 후보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나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노라 선언도 하고, 여성의 표심을 겨냥한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아주 만족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정치인들이 페미니스트 눈치를 본다는 것은 퍽 유쾌한 일이었다. 그런데 5년이나 흐른 지금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광기 취급하고, 반페미니즘이 마치 청년 전체를 대표하는 논리인 양 떠받든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여전히 심각하여, 여성들은 늘 불안을 안고 죽음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대권 주자씩이나 돼서 죽어 가는 국민을 외면하는 꼴이다. 이 무슨 꼴불견인가. 더하여, 2030 여성이 이번 선거의 결정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다. 정치에 어울리는 자들은 아니다.
허황된 공약일지라도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계속 다루었던 지난 대선보다 이번 대선이 퇴보한 것은, 단순히 후보들과 보좌진의 개인 역량 차이에서 온 문제일까. 차라리 그랬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 것 같다. 현재 대선 상황은 개인의 문제이기보다, `백래시`라는 사회 현상과 맞닿아 있다. 많은 사람이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약자를 경쟁 세력으로 모는 방법을 쉽게 선택한다. 약자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용납하지 않고, 도리어 역차별을 말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을 기존 정치권과 언론이 아무런 성찰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하고 수용하면서, 백래시가 정치 세력화하고 있다.
백래시가 변화에 대한 반발이라면, 백래시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 낸 변화가, `그들`에게 제대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신호다. 5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내었나. 무엇을 이루었기에 `그들`이 위기감을 느꼈나.
우리는 미투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는 권력형 성범죄들의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우리는 버닝썬, N번방 등 숨어 있던 성범죄들을 밝혀내고 쫓고 있다. 우리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끌어냈다. 우리는 양육비 이행 강화법과 스토킹 금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팬데믹 속에서도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있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집에서, 누군가는 미래를 대비하고, 누군가는 현재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과거를 조명한다. 우리의 행보는 다 적지 못할 만큼 방대하고,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모두 가치 있다.
백래시를 경계하고 격파해 나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때까지보다 더 현명하게 백래시를 이겨 낼 수 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계속 존재해 왔고, 끊임없이 싸워 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변화를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말고, 당장 이번 대선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