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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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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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390명이 트랜스젠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연구 자료가 없어 정확한 트랜스젠더 인구를 알 수 없다. 작년 SBS 취재 내용에 따르면 성별 정정을 신청한 트랜스젠더는 517명이다. 트랜스젠더 인구의 10~15%만 성별 정정을 신청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트랜스젠더 인구 수는 최소 6천 명으로 추정된다(SBS, 전국 트랜스젠더 6천 명 추산…65%는 수도권 거주, ’20. 5. 22일자). 미국의 연구상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엔 트랜스젠더가 약 20만 명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추정치이므로 실 인구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만큼 트랜스젠더는 드러나지 않는다. 1명이든, 10명이든, 517 명이든, 6천 명이든, 20만 명이든 트렌스젠더는 존재한다. 

군은 1982년에 제정된 「군인사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며 강제 전역시켰다. 또한, 인권위의 전역 취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철회하지 않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입학한 트랜스여성은 구성원의 반대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했다. 용기 내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배제와 혐오, 차별이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바쁜 출근 시간에 옆을 스쳐간 사람,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 식사 메뉴를 같이 고민하는 동료, 좋든 싫든 존재하는 혈연, 누구든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 및 행동장애’ 범주에서 삭제하고, ‘성전환증’이라는 진단명을 ‘성별불일치’로 정정했다. 신체적 성별과 젠더 정체성의 불일치는 질병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치료나 교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우리 옆에 트랜스젠더가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존재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차별과 폭력을 견뎌야 한다. 일상을 누리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신체적인 상해를 입거나, 집에서 쫓겨나거나,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공공장소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투표도 하기 어렵고 관공서도 쉽게 이용하지 못한다. ‘나’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교육도 누릴 수 없을 뿐더러, 학교에서부터 차별과 혐오를 경험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제때 받기도 어렵다. 관련 종사자들의 차별이나 혐오가 두려워 몸이 아파도 병원에 마음대로 갈 수 없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 화장실도 쉽게 이용할 수 없다. 심지어 보호를 받으려고 찾아간 경찰로부터 모욕적 발언과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 역시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채 숨어야만 '비교적'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트랜스젠더는 존재한다. 그리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자유와 권리를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건 당연히 차별이다.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차별이나 혐오에 노출되면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명시한다.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나’로 호명되는 모든 개인은 균일하지 않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당은 차이를 자산으로 당사자들과 연대하며 함께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고귀한 모든 생명이 안심하고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소리낼 것이다. 


2021.3.31. 
페미니즘당 창당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