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 38 여성의날 기자회견 '대통령님, 출생률 말고 자살률을 보십시오' 대표단 발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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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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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의날 페미니즘당x정치하는엄마들 기자회견

"여성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대통령님, 출생률 말고 자살률을 보십시오!"



대표단 발언 전문



제 친구들을 살려주세요 / 정다혜


코로나 19가 우리 삶을 뒤바꾼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제 주위에는 일자리를 잃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중국어 강사, 여행사 직원, 화장품 판촉원…. 모두 여성입니다. 그리고 서비스직입니다. 여초 직군입니다. 실직한 친구들은 다시 구직에 나서지만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는 사이 다들 자기 탓을 합니다. 자기가 못나서, 자기가 부족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구직도 안되고, 직장에서 짤렸다고들 생각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코로나 19로 인해 여성들의 자살율이 늘어나는 현상을 주목했습니다. 여성들이 서비스 계층, 계약직에 몰려있는 노동시장의 젠더 불균형으로 여성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고, 그래서 여성들의 자살율이 늘어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자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이야기 대신 갑자기 인구 절벽이라느니 이러다 우리나라가 사라진다는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자살 예방 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중년의 고민을 털어 놓으라고 대문짝만하게 배너가 보입니다. 2021년 자살 예방 가이드도 보입니다. 자살 징후가 보이면 어떻게 저떻게 하라… 그러나 어디에도 젊은 여성들의 죽음이 늘어난 데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다. 문제 의식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래도 우리를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정말 말할 수 있습니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저는 친구들이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안부 묻기가 전부입니다. 자기 탓을 하는 친구에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뿐입니다. 여성들의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내 친구를 갑자기 잃게 되는 건 아닐까 무섭습니다. 이미 죽어간 여성들도 다 저와 같은, 제 친구들과 같은 평범한 여성들이었을 겁니다. 누군가의 친구였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힘이 없어서 다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밥 한끼 사줄 돈 밖에, 기프티콘이나 하나 쏴 주는 거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하지만 대통령님은 아닙니다. 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지속될 거라고 합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제 친구들이 죽어나갈 지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 부탁드립니다. 여성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을 구해 주십시오. 



나만 죽고 싶니 / 이소윤


안녕하세요,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로 있는 이소윤입니다.

우선 발언에 앞서, 이 세상을 떠나간 많은 자매님들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또한 지금도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많은 자매님들 감사합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고작 25년 정도를 살면서 떠나보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자주 누군가를 떠나 보내게 되더군요.

물론 생명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습니다. 죽음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죠. 하지만 현재 보여지는 여성 자살률은, 언젠가 당연히 맞이하는 죽음이 아닙니다.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이렇게 여성 자살률 얘기를 하다 보면 꼭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노인과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다’고요.  압니다.  높다, 낮다만 얘기하면 그쪽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증가하는가, 감소하는가 입니다. 여성 자살률만 급증하고 있습니다.


왜 다들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여성들은 점점 나빠질까요? 여성들이 감성적이어서? 여성들이 더 나약해서? 여성들이 더 책임감이 없어서? 아니요. 전부 틀렸습니다. 그럼 여성들은, 특히 젊은 여성들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요? 저는 당사자로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스물여섯이고, 프리랜서이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정말 몇 번이고 죽을 뻔했습니다.

저처럼 정규직이 아닌 여성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도 서빙을 굉장히 많이 해왔습니다. 코로나로 일자리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요즘은 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냥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힘든 세상은 더 힘들어지고, 돈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죠? 거기다 나는 이렇게 죽겠는데, 저출생이니 인구감소니… 한숨만 나옵니다. 제가 보기엔 너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살고 싶어 합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살할 용기로 살아라,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그런 말들을 합니다.

자살할 용기로 살라고요? 용기는 무슨, 당신들은 용기로 살아갑니까? 소소한 행복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용기로 살아야 하죠? 제가 용사입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생각했을 때 더 나을 것 같은 선택을 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하죠? 똑같은 겁니다. 죽음이 더 나을 것 같으니까 죽음을 선택하는 겁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요? 범죄자가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는 이 사회에서요? 이대로 살다 보면 여성만 ‘골라서’ 죽이는 묻지마 살인에 죽을 것 같은데요? 범죄 피해를 밝히기라도 하면 쌍욕을 듣다가 사회에서 매장될 것 같은데요? 그런 일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더 안전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회를, 이 세상을 믿지 않습니다. 크면 클수록 확고한 신념이 되어 머리와 가슴에 새겨집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나요? 정의도 없는 이딴 파렴치한 세상에,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서,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살아야 해요? 저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다같이 힘든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든데, 함께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앞으로도 계속 떠나보내기만 할 건가요?


대통령님, 의원님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보세요. 더 나은 선택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세요. 여성의 자살률만 급증하는 이유를 찾고, 이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나는 살고 싶다 / 이가현


요새 여초커뮤니티를 들어가보면 죽고싶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입니다. 정말 여성들의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감납니다. 맨날 집에만 있으니 우울하다는 말은 기본이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소득이 확 줄어서 생활 반경이 좁아졌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여성혐오적인 발언과 성희롱 성추행에 노출된 여성들이 그나마 몇 년간 페미니즘을 만나고 거리에 나오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를 받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냈다면 지금은 그것마저도 사라진 느낌입니다. 2019년 설리와 구하라의 자살 이후 여성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기운이 쭉 빠집니다. 여성들을 살리기 위해 여성인권 운동을 시작했는데, 요새는 계속 떠나보내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성자살율이 높아진다고 아무리 기사가 나와도 정부에서는 이렇다할 대책이 없습니다. 여성 취업률이 남성에 비해서 급감하고 여성들의 소득이 낮아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가정폭력에도 취약해진다는데 정부는 엉뚱하게 인구절벽이니 출생률이 0점대로 떨어졌느니 90년대생 부모들이 희망이라느니 하는 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취약해지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가정폭력에서 구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로 갈아치우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주위에서는 어차피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이렇게 일자리가 없고 가난한 여성들은 죽어서 점차 사라지고 좋은 일자리를 가진 여성이나 좋은 일자리를 가진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만 아이를 낳아서 대를 잇습니다. 자살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출생율만 따지는 정부를 보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은 멸종시키고 부유한 사람들만 생존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 승리호에서 오염된 지구는 멸망시키고 부유한 사람들만 데리고 화성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음모처럼 말입니다. 


보궐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죄다 부동산 공약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부동산 정책에도 코로나 상황에 취약해져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자리는 없습니다. 평당 천만원의 아파트, 누군가는 그 정도 집값이 적정집값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단 한 평의 아파트에서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집을 가지고 있고 집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안정된 일자리의 중산층까지가 부동산 정책의 수혜대상이 됩니다. 이러니 우리는 각자도생하는 것밖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혼, 비출산이 엄청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내 삶에 위험이 되는 요소는 최대한 없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의 대책인 것입니다. 


청년들의 비혼과 비출산은 절대 허공에서 생겨난 경향이 아닙니다. 결혼과 출산을 한 윗세대 여성들의 증언과 청년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목격한 것들을 토대로 개개인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입니다. 생존이 보장되어야 생존보다 더 나아간 자아실현과 관계에 대한 욕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개인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윽박지르는 시대에 왜 출산율을 운운하면서 여성들에게 죄책감과 부담감을 심으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의 생존권과 인권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이지만, 자살율과 출생률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숫자로 사는 삶에는 빵도 장미도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임했습니다. 수많은 다른 인권에 나중에를 외치면서 페미니스트만은 약속했던 대통령 당신이 저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부로서 해야할 최소한의 역할마저도 저버리고 있는 청와대를 규탄합니다. 자살율 뒤에 있는 사람을 보고, 여성들을 살려내십시오. 저는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