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백래시와 페미니즘 기획 논평 ①] 백래시의 시대, 페미니스트의 역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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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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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를 맞이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에서 '백래시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시리즈 논평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다루고,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한솔의 여는 글을 시작으로, 매월 마지막 주 대표단의 글이 올라옵니다. 



답이 없는 걸 알면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질문 자체를 고민하기 위해 질문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때로 순간을 넘어 시대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약 5년이 흐른 지금, 페미니즘이 무엇이냐는 답 없는 질문 역시 리부트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오래되었고, 반복되었으며, 이 과정을 거쳐 페미니즘 자체가 변화해왔다. 지금 부러 이 질문을 꺼내는 이유는 백래시의 시대에 페미니스트들의 역동을 긍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소위 ‘젠더 선거’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 선거의 시발점에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안티 페미니즘’의 성과였는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 질문을 좁혀보자. 오세훈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인 20대 남성은 민주당을 벌한 것일까? 맞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민주당이 ‘페미니즘 친화적’이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민주당은 페미니즘 친화적이었던 적 없다. 하지만 많은 남성에게 민주당은 ‘친페미당’으로 읽히기도 했으므로, 본질을 떠나 그렇게 해석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20대 남성의 투표 결과는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 표출이었고, 페미니즘은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의 부분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분노에 불을 지핀 가장 크고 직접적인 소재는 ‘LH 사태’로 상징된 부동산 문제 아니었나?

그런데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표심은 언론을 중심으로 안티 페미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의미화되었다. 이는 안티 페미니스트 ‘집단’을 실체화했고, 실체화된 집단은 빠르게 정치세력화되었다. 기업은 이 집단의 요구에 너무 쉽게 져주며 이들을 어르고 달랬다. 언론은 매 순간 호들갑 떨며 이들을 조명했다. 발 빠르게 마이크를 잡고 이들의 논리를 설파하는 ‘청년’ 남성 정치인 이준석이 있었고, 언론, 기성 86세대의 여론 주도자들, 정치인들은 그가 이 집단의 대표성을 띠도록 자양분을 제공했다. 재계-정계-언론의 이러한 행태는 안티 페미니스트가 정치세력이 되는 과정 자체인 동시에 이들을 정치세력으로 양육하는 환경이었다.

동시에, 이전부터 존재한 청년 여성 정치인은 지워졌다. 제21대 총선에 출마하고 당선된 2030 여성들이 있고 심지어 이준석조차 갑작스레 등장한 적 없음에도, 언론은 ‘청년 세대가 뜬다’며 20대 남성으로 대표되는 안티 페미니스트 세력을 청년 정치로 치환했다. 이조차 청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으나, 안티 페미니즘이 제도정치 안에서 새로이 브랜딩 되기엔 충분했다.

이 흐름에서 국가대표의 숏컷을 두고 시비 거는 사태가 발생했다. 페미니스트인 것 같으니 금메달을 뺏어야 한다는 주장과 악플이 쏟아졌다. 개인의 발언과 취향을 두고 사상 검열을 요구한 사례이자, 불특정 다수가 익명을 무기로 저지른 폭력이었다. 안티 페미니즘을 등에 업은 '청년 정치인'들은 국가대표의 과거 언행을 탓했다. 이는 두 가지 질문을 남긴다. 페미니스트(로 보인다)면 괴롭힘당해도 되는가? 만약 괴롭힘의 대상이 ‘국보급’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학교 안 숱한 백래시 사례는 질문에 비관적 답을 내놓게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7월 전국 교사 1,13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성 교사 3명 중 1명은 최근 3년간 다양한 형태의 백래시를 받았다. ‘메갈’, ‘페미’ 용어를 사용한 조롱,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혐오표현, 비난과 공격, 성평등 수업 방해 및 거부와 같은 형태였다. 또한, 2030 여성 교사의 66.0%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교사를 향한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 행위자 모두, 절반 이상이 학생이었다.

최근, 이러한 백래시에 맞서 여성들이 1인 시위를 조직한 적 있다. 일명 ‘해일 시위’였다. 이 시위의 주요 슬로건은 “여성혐오에 편승한 정치권 규탄한다”와 “여성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였다. 이에 ‘신남성연대’ 배인규 대표는 1인 시위 하는 여성을 따라다니며 물총을 쏘고 언어폭력을 가했다. 같은 시기, 그는 1인시위를 조직한 팀 해일의 메신저 방에서 나온 '남성혐오' 대화라며 몇몇 캡처를 온라인에 올렸다. 페미니스트를 '남성혐오자'로,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짜맞추기 위해 조작된 캡처였다. 언론은 조작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 기사화했다. 페미니즘 운동을 지우고 그 자리에 '남성혐오'와 '젠더 갈등’을 채우려는 행위였다. 

실체 없는 ‘남성혐오’가 실재하는 여성혐오와 동일선상에 놓이며 페미니즘으로 왜곡되는 광경은 익숙하다. 메갈리아로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초창기, 그러니까 2015~16년 즈음 미러링을 향한 잣대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금은 2016년이 아니다. 여성은 페미니즘을 근거로 정치세력화되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성희롱은 이제 ‘농담’이 되지 않는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비로소 사회적·법적 폭력이 되었다. 조직의 불균형한 성비가 드러났고, 여성의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젠더감수성, 성인지감수성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것이 ‘올바른’ 단어라는 인식이 퍼졌다. ‘페미 코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젠더감수성을 고려한 상업 콘텐츠가 많아졌다. 창작물 속 여성의 모습과 역할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적어도 사회가 ‘여성/페미니스트의 눈치를 보는’ 수준이 된 것이다. 다양한 성애와 젠더 정체성 용어의 인지도 역시 올라갔다. 이제 온라인에서 퀴어, 호모/바이/판/에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와 같은 용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낙태죄’ 없는 한국에 살고 있다. 지금의 백래시는 이러한 페미니스트의 성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반작용이다.

그러니 지금, 새삼스러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페미니스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더는 ‘한줌 페미’를 위협하지 않을 만큼 페미니스트 집단은 성장했다. 치열한 고민과 성찰, 논쟁은 분열이 아니라 역동으로 읽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외부의 시선이 아닌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페미니즘을 논하고 정의해야 한다. 2021년에도 ‘남성혐오’와 페미니즘을 동일시하는 안티 페미니스트의 프레이밍이 유효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은 한 번도 ‘남성혐오’와 동일했던 적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쉽게 동일시된다면,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는 방어 이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을 명확한 언어로 계속해서 정의해야 한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은 교차하는 정체성들이 연대하며 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페미니즘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나 분리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드러내듯 연대의 구심점은 비/자발적 여성이나, 여성만일 수는 없다. 첫째, 여성에게 여성 정체성만 있지 않고, 둘째, 여성만으로 사회의 평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위시한 연대는 차별에 맞서는 모두의 연대가 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을 의제로 둔 우리는 당사자성에 기반하여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당사자성은 하나가 아니기에, 우리의 정체성 정치는 서로 다른 위치와 해석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정치이다.

우리의 운동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서로의 언어를 확인하며 타협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이는 지난하고 피곤하며 애매모호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불명확성과 불확실성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실천 아닐까? 우리는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모순과 폭력을 비판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때, 주변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 페미니즘이 또 다른 주변을 삭제하는 모순을 보인다면, 이 또한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페미니스트의 역동으로 만들어가야한다. 이것이 페미니즘당 창당모임이 평등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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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