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성이 기본값인 정치문화를 청산하라 -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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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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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정의당은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국회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확인하고, 김 대표를 즉시 직위해제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이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지만, 정작 이 사태를 만든 정치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권에서 ‘미투’로 대변되는 성폭력 내부 고발이 터져 나온 것은 오래전이나 이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서의 여성은 꽃이요, 필요할 때만 상징적으로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정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여성 공천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 또한 주요 당직자 중 여성은 거의 없으며 일부 의원실에서는 아직도 여성 비서에게만 차 심부름을 시키거나, 중요한 일은 주지 않는 등 정치권 내에는 성차별이 만연하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명의 노동자로서 장혜영 의원을 바라본다면, 우리도 누구나 장혜영 의원처럼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였으며, 또는 피해자 이기도 하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견고하게 유지되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노동자가 아니라 남성의 보조자로, 도구로 머물게 만들었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다. 직원이 아니라 ‘여’직원으로 지칭되어야만 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오늘도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며 힘겨운 일상을 견디고 있다.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 오거돈 부산시장 성폭력 사건, 안희정 성폭력 사건 모두 일터에서의 폭력이다. 심지어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국회의원이라는 선출직 공무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일어났다. 직장 내 위계뿐만 아니라 나이권력과 젠더권력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폭력 사건이라도 피해자가 여성이면 공적인 문제가 사적인 문제로 바뀌어 버린다. 견고한 남성연대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둔갑시키고, 피해자의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결국 폭력은 사라지고 여성혐오만 남는다.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고발을 망설이고, 그저 참으며 견딜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들의 끊임없는 성폭력 고발을 통해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의 성폭력을 마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미투’는 젠더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피해자의 몸부림이며 ‘인권’의 문제이다. 2018년 9월 20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씨는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라는 글을 <노동과 세계>에 게재했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고 싶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싶을 뿐이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제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당 지도부가 이번 사건을 회피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반성과 개선을 천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결정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당당히 밝힌 장혜영 국회의원과 더불어 정의당 젠더인권본부, 여성위원회, 정의당 여성주의자모임처럼 성평등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 정의당 내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당의 다짐이 지켜지는지 앞으로의 개선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실패하는가’라는 장혜영 의원의 질문은 남성이 기본값이 되어 작동하고 있는 정치문화로부터 차별과 폭력이 발생함을 지적한다. 정치권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일부’ 남성 정치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잘못을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남성이 기본값인 정치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 


 

2021. 1. 27.

페미니즘당 창당모임